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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헤어지는 중 - 김희진

2023-11-21

ⓒ Getty Images Bank
그는 우리의 결혼 기념 이주년이 되던 날,
내가 좋아하는 시폰케이크와 함께 로이를 사 들고 왔다.
RO-294759라는 일련번호를 가진 녀석이었다. 

영리한 로이는 착하고 사랑스러웠다.
무엇보다 간편하고 조용한데다가 깔끔했다.
보통의 강아지처럼 밥을 챙겨줘야 한다거나
대소변을 치워줘야 할 일이 없으니 당연했다.
한동안 줄어들었던 대화와 웃음이 녀석으로 인해 되살아나고,
녀석을 매개로 한 둘러앉음이 잦아진 것도 좋은 변화 중 하나였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로이는 ‘올-에이아이(ALL-AI)’사가 내놓은 제품 중에 
가장 하등한 인공지능이 장착된 애견로봇이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꽤 스마트한 교감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의 언어와 표정과 행동들을 인지했고,
인간의 여러 감정 중에 다섯 가지 정도를 읽어낼 줄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로이가 그와 나만의 공간, 특히 침실에 들어와 있으면 신경이 거슬렸다.
녀석은 유독 침대 위에서 벌이는 그와 나의 행위를 빤히 쳐다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로이를 쫒아내기에 바빴다.
그러면 그는 관계를 하다 말고 침대에서 일어나 녀석을 달래러 쪼르르 따라 나갔다.

“왜 자꾸 로이를 밀어내는 건데!” 

절정의 순간을 망쳐버린 게 화가 난 터라 나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난 저 녀석 눈동자가 맘에 안 들어!  처음부터 그랬어!”


# 인터뷰. 방민호
ALL-AI회사라고 나오잖아요. 그런 회사에 주문을 하는 거예요. 나는 비누향 나는 남자가 좋아, 작곡가면 좋겠어. 그런 옵션을 가진 남자를 배달해 주는 겁니다. 그럼 그런 남자와 소개팅부터 해서 결혼생활까지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남자와 사람을 나누고 있는데 애완동물이 들어와서 보고 있단 말이죠. 카메라 눈 같은 느낌을 갖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그거는 정말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반응이라고 얘기를 할 수가 있는데 AI인 남자는 AI 애견에 대해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죠. 바로 그 과정 속에서 여자는 이 관계를 회의하게 되죠. 이 이야기는 만약 AI처럼 내가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그래서 상대를 여러 번 바꿀 수 있는 그런 사회에 던져놓고 과연 사랑이란 무엇이겠는가? 결혼이란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헤어짐을 무엇이겠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죠.


나는 휴대폰을 닫고 그를 바라봤다.
십 분후에 그의 모든 기능이 멈추고 나면
그는 다른 직업과 다른 성향과 다른 성격을 가진 또 다른 그로 재설정될 것이다.
그의 몸에서는 더 이상 비누향이 나지 않을 것이며,
목소리도 걸음걸이도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다음번엔 요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본 적이 없는 그가 될지도 몰랐다.

나는 고개를 떨군 그의 머리를 마지막으로 쓰다듬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다시 사랑이란 걸 할 수 있을까? 결혼은?
그런데 왜 나는 다음에 그가 만나게 될 여자가 궁금해지는 걸까?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꿰어 신으려던 나는 뒤돌아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힘없이 떨궈진 그의 고개가 나를 향해 
잘 다녀오라며 인사를 하는 것만 같았다.



작가 김희진/ (광주광역시, 1976.12.12.~)
    - 등단 :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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