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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빛이 나지 않아요 - 임선우

2023-12-12

ⓒ Getty Images Bank
이러나저러나 구와 내가 남들만큼 살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해파리들 덕분이었다.
더는 공과금이 밀릴 일도,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일도 없었다.
나로 말하자면 3일에 한 명꼴로 해파리를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살기에는 지쳤고 죽기에는 억울한 사람들은 해파리만큼이나 많았다.
구와 나는 고객들의 변신에 점차 무뎌졌다.

이번에 맡게 된 고객은 김지선씨였다.
서비스직 종사자, 51세. 3년 전에 이혼했다고 했다.
변신 이유를 적는 칸에는 해파리가 되고 싶어서, 라고 적힌 것이 전부였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사장이 떠난 집에서 지선 씨와 나는 커튼을 치고 빛을 기다렸다.
나는 지선씨가 빛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

죽집 사장이 들어서고, 집 안의 공기가 달라지는 순간,
나는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장을 본 지선씨는 미련을 버리는 대신 그를 계속해서 사랑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나는 지선씨가 영원히 해파리가 아닌 지선씨로 남게 될 것이라고 짐작했다.


# 인터뷰. 전소영
주인공은 돈벌이가 되지 않은 노래를 포기하고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돈을 벌었어요. 그렇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의 마음을 놓지 못하고 인간으로 죽음을 택한 지선씨를 바라본 주인공의 심정에 변화가 생겨납니다. 지선씨가 자기 마음만은 마지막까지 지켜내듯 노래를 지키면서 살아가기로 한 거죠.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인데 ‘단 한 번의 빛만 생각할 것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문장은 마치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는 것도 같아요. 인간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 당신의 인간성을 지탱해주는 빛은 무엇이냐고요.


나는 눈을 감고 지선씨가 봤을 빛에 대해 생각했다.
그 빛은 지선씨가 오래 전 바닷가에서 본 것처럼 환하고 아름다웠을까.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 나 다시 노래하려고. 오늘 서울로 돌아갈 거야.” 

나는 빈 수조를 바라보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나는 오늘 밤 구를 떠날 것이고 심야버스에 오를 것이다.
다시 노래를 부르고 다시 망하거나 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해변에서 멀어지는 동안에는 지선씨가 보았을 빛,
단 한 번의 빛만을 생각할 것이다.



작가 임선우 (서울, 1995.~)
    - 등단 : 2019년 단편소설 [조금은 견딜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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