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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언니 2 - 심아진

2024-01-09

ⓒ Getty Images Bank
저기, 정무운이 온다.
평소처럼 땅에 시선을 두고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린 채 걸어 올라오고 있다.
우리는 아직 그의 눈에 띄지 않는다.
나는 다 집어치우고 그 자리를 떠나 시원하게 맥주라도 한잔 들이켜고픈 기분이다.
도대체 이 하찮은 청년이 뭐란 말인가?
어째서 언니와 나는 이 사람이 동요하기를 바라는가?
우리는 정무운이 우리를 의식하지 않음으로 인해 
모든 시간이 뒤틀려버릴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 인터뷰. 전소영
〈언니〉 에는 오랜 시간 서열 싸움에 열중해 온 세 명의 신이 등장을 합니다. 그들은 세 자매라고 되어있는데, 그중 쌍둥이는 각각 행운과 불운의 신이고 이복동생인 막내는 사랑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행운도 불운도 사랑도 운명과 관계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죠. 하지만 행운이나 불운의 경우 이미 목적이 정해진 것과 다르게 사랑은 인간에게 불운이 될 수도 있고 행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무운은 지친 인간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신들조차 그의 눈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던 것이죠.  즉 힘든 삶을 살다보니  행운에도 그다지 기뻐하지 않고 불운에도 그다지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겁니다. 하지만 사랑은 메말라 있던 그의 마음에 서서히 스며들면서 가슴을 뛰게 만들었죠, 그래서 사랑의 신이 결국 승리를 하게 된 건데, 즉 이 작품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담고 있는 그런 우화인 것이죠.


“많이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힐 신고는 걸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무운씨 댁에서 편한 신발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뜻밖에 정무운이 고개를 끄덕인다.
충격적이다.
언니나 내게는 식당 계산대에서 집어 들 수도 집어 들지 않을 수도 있는
박하사탕처럼 대하던 정무운이 고개를 끄덕이다니.
언니와 나는 열패감에 휩싸인다.



작가 심아진 (경남 마산, 1972. ~ )
    - 등단 : 1999년 중편소설 [차 마시는 시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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