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역사

1998년 금강산 관광

2018-06-21

한반도 리포트

1998년 금강산 관광
지난 1일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개성공단에 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해 남북 경제협력 재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 오는 22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하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늘은 1998년에 시작된 ‘금강산 관광’을 되돌아본다.

1998년 11월 18일 ‘현대 금강호’ 첫 출항
1998년 11월 18일 관광객과 승무원 등 1355명을 태운 ‘현대 금강호’가 강원도 동해항에서 금강산을 향해 출항했다. 금강산 관광은 10년의 기다림 끝에 이뤄진 사업이다.
현대 정주영 회장은 1989년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 관광 및 시베리아 공동개발에 관한 의정서’를 체결했다.
이렇게 시작된 금강산 관광 실현을 위한 노력은 계속됐고 1998년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2차 ‘소떼 방북’ 한 달 후 한국 국민들은 반세기 만에 ‘금강산 관광’으로 북한 땅을 밟게 됐다.

2004년 금강산 관광객 27만 2000명으로 급증
2003년 2월 5일 민간인 최초로 판문점을 거치지 않고 동해안 도로를 통해 북한으로 향한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은 금강산 육로 관광을 위한 시험 답사를 시행했다.
그 후 같은 해 9월부터 금강산 육로 관광이 시작됐다.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가면 9시간 걸리던 금강산을 육로로 신속하게 갈 수 있게 되자
2003년 7만 7000명이던 관광객 수가 2004년에는 27만 2000명으로 급증했다.
2008년에는 승용차 관광까지 허용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 관광에 나섰다.

관광객 총격 사망으로 금강산 관광 중단
2008년 7월 11일 한국 관광객 박왕자 씨가 관광을 하던 중 북한국의 총격으로 사망하자 한국 정부는 금강산 관광 중단 조치를 내렸다. 관광 중단 조치가 계속되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2009년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관광객 안전 보장을 포함한 합의안을 체결했다.
그러나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2010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하면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금강산 관광은 무기한 중단됐다.

금강산 가는 길 다시 열리길 고대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간 금강산 관광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난 10년 동안 한국 국민들은 한반도에 다시 평화가 찾아와 금강산을 다시 가볼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최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