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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000년 분단 후 첫 남북정상회담

2018-07-05

한반도 리포트

2000년 분단 후 첫 남북정상회담

분단 후 첫 남북정상회담이 2000년에 이뤄졌다.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첫 남북정상회담 당시의 상황과 의미에 대해 당시 대북특사로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기여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증언을 중심으로 되돌아본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에서 남북정상회담 필요성 강조
1971년 대선후보 시절부터 통일론을 주창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취임 이후 남북이 냉전시대를 끝내고 화해와 협력으로 평화 공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대북 포용정책 즉 ‘햇볕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고 2000년에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을 대북 특사로 지명했다.

남북 평화 공존을 위한 ‘베를린 선언’ 
2000년 3월 10일 남북정상회담 실현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과 국정원의 김보현 국장, 서훈 과장이 북측의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싱가포르에서 첫 비밀 접촉을 가졌다. 
당시에는 북측은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제안과 대북포용정책에 대해 신뢰를 갖지 못했다.
이 같은 생각이 해소된 계기는 2000년 3월 9일 독일을 방문 중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발표한 ‘베를린선언’ 이었다. “한국 정부는 북한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교류하며 북한을 돕고 싶다.”는 내용의 이 선언으로 북한은 한국 정부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박지원 특사는 북측과 베이징에서 수차례 비공개로 협의를 가진 뒤 4월 8일 남북 간 최종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4월 10일 오전 10시. 한국 정부는 남북이 분단 이후 최초로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데 합의했다는 사실을 정부 중대 발표로 공개했다. 북한도 같은 시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했다.

합의 이후에도 남북 간 의견 대립으로 긴장 고조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이후에도 남북 간 의견 대립으로 긴장이 고조됐다.
남북공동선언문의 서명자에 대해 남측은 김정일 위원장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북측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이름을 내세우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또 북측이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궁전 참배를 요구하면서 6월 12일로 예정된 평양 방문은 연기됐다.

2000년 6월 13일 남북 정상 첫 만남
우여곡절 끝에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13일 오전 9시 18분 성남 비행장에서 특별기를 타고 북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25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대통령 특별기 트랩을 내려오는 김대중 대통령을 김정일 위원장이 반갑게 맞이했고 분단 이후 최초로 두 손을 마주잡은 남북 정상의 모습을 방송을 통해 지켜본 전 국민들의 마음에는 남북 화해, 공존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넘쳤다. 
‘6.15 남북 공동선언’ 등 첫 남북정상회담의 결실에 대한 얘기는 다음 주에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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