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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18-07-12

한반도 리포트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남북 관계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만들었다.
2박 3일의 일정 동안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다양한 현안을 논의했고 ‘615 남북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인 합의를 했다.
당시 대북특사였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얘기를 중심으로 ‘615 남북공동선언’의 배경과 의미를 돌아본다.

어려움 딛고 6월 14일 남북정상회담 성사
김대중 대통령이 6월 13일 평양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 때까지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전제 조건으로 금수산 궁전 참배를 요구하는 등 남북 간 의견 대립이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항에 마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언급한대로 6월 14일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렸다.

화해와 협력의 새 길 담은 ‘615 남북공동선언’
6월 14일 오후 3시부터 6시 50분까지 마라톤회담을 이어간 남북 정상은 밤 11시 20분에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분단 55년 만에 나온 첫 남북 정상 간의 합의 ‘615 공동선언’에는 남북이 대립 관계를 끝내고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방안들이 담겨있었다.
주요 내용은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1국가 2체제의 통일 방안 협의,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등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분단 이후 최초로 서로의 통일 방안에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한 부분이다.

2002년 2차 북핵 위기로 다시 긴장 상태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됐다.
끊겼던 철길도 복원되고 개성공단 합의 등 성과도 많았다. 한반도엔 화해와 평화 분위기가 넘쳤다.
그러나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으로 야기된 2차 북핵 위기로 한반도는 다시 긴장 상태에 빠졌다.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연 첫 걸음
2000년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그 결실인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북 간의 대결 상황을 종식하고 평화와 협력의 방안을 모색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간의 첫 걸음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첫 걸음에 담았던 뜻이 이어져 모처럼 다시 불고 있는 한반도 화해와 평화의 움직임이 의미 있는 결실을 이룰 수 있길 온 국민이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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