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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 1부-광복의 기쁨을 노래하다

2015-01-06

제 1부-광복의 기쁨을 노래하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특집 기획으로 광복의 의미를 새기고 광복 이후 혼란과 어려움을 딛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되짚어보는 특집 기획을 마련한다.
오늘은 1부 시간으로 광복 직후의 모습, 광복이 되기까지 우리 민족의 고난과 저항을 조명한다.

1945년 8월 15일, 꿈에 그리던 조선의 독립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환희와 영광의 날이다.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는 함성이 넘쳤다. 온 국민은 집안에 숨겨 놓았던 태극기를 꺼내들고 대한독립만세와 애국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라디오로 흘러나온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으로 일본 제국이 무너지고 그토록 염원하던 대한 독립이 쟁취되던 날의 감격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으로 간직하고 있다.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의 암흑기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는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어둡고 고통스럽던 시기다.
일본이 막바지 전쟁 때 징용으로 끌고 간 한국인의 수는 19만 명, 또 군속, 군무원으로 착출해 간 조선인의 수는 15만 명, 또 모집 등 다른 이름으로 전장으로 강제로 끌고간 조선인 수는 112만 명으로 다 합치면 250만 명에 달한다. 1944년 한반도 인구가 2,50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약 10%가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희생된 것이다. 또 일본의 한국 문화 말살 정책에 의해 한글, 한국말 사용을 금지시켜 우리 문화의 암흑기를 겪기도 했다.

독립 쟁취는 굽힐 줄 모르는 우리 민족의 저항의 산물
한국인을 폄하하는 일부 외국인들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이 연합군의 승리로 이뤄진 것이므로 한국의 독립은 자주적으로 쟁취된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한국인들의 끈질긴 독립 투쟁이 없었다면 연합국들이 한국에게 독립을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일제의 탄압과 문화 말살 정책에도 굽히지 않고 국내외에서 목숨을 걸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치열한 투쟁을 계속했고 그것이 광복의 원동력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38선으로 남북 분단의 비극
광복 직후 한국은 기쁨과 희망이 넘쳤다. 또 부강한 나라를 만들려는 열기도 뜨거웠다.
그러한 기쁨과 희망도 잠시!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갈라지는 비극이 시작됐다. 분단된 한반도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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