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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 3부-동족상잔의 비극, ‘한국 전쟁’

2015-01-20

제 3부-동족상잔의 비극, ‘한국 전쟁’
일제 강점기의 고통에서 해방의 감격을 맞은 기쁨도 잠시,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지고 1948년 남과 북에 각각 다른 정부가 들어섰다.
그로부터 2년 후 1950년 6월 25일 우리 민족의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족상잔의 비극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65년이 지난 지금까지 치유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는 그 비극의 기억 ‘한국 전쟁’을 조명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남침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일반 시민들은 그것이 한국전쟁으로 이어질 줄로 예감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38선으로 남북이 분단된 이후로 38선 경계선 인근에서의 남북 군인들간의 충돌은 수시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의 도발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북한은 내부적인 준비와 함께 중국, 소련과 비밀 협정을 맺으며 무력으로 남한을 점령하기 위한 치밀한 준비를 해온 것이다.

전쟁 시작 사흘 만에 서울 점령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들의 행진에 한국군은 무참히 무너지며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전쟁 개시 사흘 만에 북한군들은 서울의 주요 거점을 점령했고 서울 시민들은 남쪽으로 피난 행렬에 합류했다.

처참했던 피난길
간단한 가재도구만 챙겨 황급히 피난길에 나선 서울 시민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총소리, 대포소리를 들으면서 옆에서 죽어가는 가족, 친지들을 버리고 먼 길을 떠나는 피난 행렬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한국전쟁 중에 수많은 고아와 이산가족들이 생겨 아직도 만나지 못하는 아픔이 계속되고 있다.

3년간 이어진 승자도 패자도 없는 비극의 전쟁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전세는 역전되고 북한군은 퇴각하고 서울은 수복된다. 그러나 북한군에 합세한 중국군의 인해전술 등으로 전세는 엎치락뒷치락을 반복하며 3년여 계속된다.
결국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조인으로 한국전쟁은 일단락된다.
그러나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로 지금까지 남북의 대치 상황은 계속되고 민족의 비극은 진행형이다. 수 많은 인명 사상과 재산 손실을 남긴 한국 전쟁! 무엇보다도 씻을 수 없는 상처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 총칼로 맞서는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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