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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 5부-경제 성장의 디딤돌을 놓다

2015-02-03

제 5부-경제 성장의 디딤돌을 놓다
1950년부터 3년 동안 계속된 한국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다.
전후의 참상을 딛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새로운 한국을 건설하려는 노력에 전 국민들이 동참했다. 산업 철도가 건설되고 고속도로가 뚫리고 섬유 공장 등 산업 시설들도 하나 둘 건설되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마련되던 전후 한국 사회의 모습을 조명한다.

국가 경제의 동맥, 산업 철도 건설
우리나라 3대 산업선 중 하나인 문경, 마성, 은성 등 거대한 탄광구를 연결하는 문경 산업철도가 1955년 9월 15일에 개통됐다.
경상북도 점촌에서 가은을 잇는 문경선은 문경 지역에 매장된 석탄, 아연 등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산업철도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1956년 1월,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영암선과 영월선이 개통돼 전국의 주요 산업 시설과 도심을 연결하는 인프라 구축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미국의 원조도 경제 발전의 동력
전후 폐허가된 나라를 다시 복구 시키는데는 자력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유엔과 우방국들의 원조가 있었다.
그 중에도 미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대량의 원조를 제공해 한국의 복구에 큰 힘이 됐다. 미국의 원조에는 계획원조와 잉여농산물 원조가 있었다. 계획원조는 일정한 계획하에 한국의 산업 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원조였다. 또 잉여농산물원조는 한국에 부족한 옥수수, 탈지분유 등 식량을 원조하는 것이었다. 제당, 제분, 면방직 공장 등 산업시설들이 미국의 원조를 받아 건설됐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경제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자립 경제 기틀 마련 위해 노력
우방국들의 원조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1950년대 말 부터는 다른 나라의 지원 없이 자립할 수 있는 경제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자립의 목소리가 높았다.
국산품 애용 캠페인과 생산재 공업 중심의 산업정책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57년 9월엔 경상북도 문경에 시멘트 공장이 들어섰다. 1959년 3월에는 충주에 비료공장이 세워지고 경제 도약의 발판이 하나 둘씩 마련돼 대한민국의 미래에 희망을 심은 시기였다.
폐허의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은 그렇게 건설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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