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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 7부-피어라! 민주주의의 꽃

2015-02-17

제 7부-피어라! 민주주의의 꽃
1950년에 발발, 3년간 지속된 한국전쟁은 한국을 폐허로 만들었고 국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전 국민이 단결해 산업 철도를 건설하고 주요 산업 시설들을 세우며 한국민들은 조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 갔다.

1960년 3월 15일, 집권 12년이 된 자유당 정권은 집권 연장을 위해 온갖 부정 행위를 동원, 대통령, 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압승한다. 그러나 부정한 방법으로 정권을 연장한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국민들의 분노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마침내 1960년 4월 19일, 학생 중심의 전국적인 집회와 투쟁이 정점에 이르렀고 서울 지역의 학생 시민들이 지금의 청와대, 즉 경무대로 몰려갔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경찰의 총탄이 시위 군중들을 겨냥해 180명의 사상자와 6000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생겼다.
한국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4.19를 전후한 한국 상황을 조명한다.

4.19 계기로 전 국민들의 투쟁 더욱 가열
궁지에 몰린 자유당 정권은 무력으로 국민들의 투쟁을 저지하려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경찰의 발포로 친구, 가족을 잃은 국민들이 분노의 열기는 더욱 확산됐다.
4월 25일에는 교수들도 시국선언을 선포하고 거리 투쟁에 나서는 등 전국적인 투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12년 간 장기 집권하면서 국민들의 신임을 얻지 못한 자유당 정권이 온갖 부정선거로 재 집권하려하자 분노한 국민들이 목숨을 걸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선 것이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선언
초등학생들까지 시위에 나서는 등 전 국민적인 투쟁의 열기가 그칠 줄 모르자 마침내 자유당 정권이 항복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4월 26일에 하야를 선언했다. 12년 집권한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고 국민들은 환호했다. 4.19는 학생들을 선봉으로 한 비폭력 민주혁명으로 한국 역사에 의미 있는 일로 기록되고 있다.

민주 시민 역량의 원동력
4.19 혁명은 시민들의 힘이 철옹성 같은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한국인들의 역동성을 재확인한 의미도 크다. 국민들의 뜻에 반하는 정권은 지속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 4.19혁명은 이후에도 한국 국민들의 저력, 정의를 위한 힘의 원동력이 돼 왔다는 평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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