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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 28부-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다

2015-07-14

제 28부-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다
1972년 7월 4일 분단 이후 서로를 부정하며 치열하게 대립하던 남북한이 통일과 관련해 합의한 성명을 동시에 발표한다.
내용은 이렇다.
첫째 통일은 외세의 간섭 없이 남북한 스스로 자주적으로 이뤄야 한다.
둘째 통일은 무력을 배제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뤄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을 넘어 한민족이라는 마음으로 민족 대단결을 도모한다.
이런 내용으로 발표된 7.4 공동선언은 온 국민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튼 ‘7.4 공동성명’ 그리고 이후 남북 교류 상황을 조명한다.

북한의 일방적 대화 거부로 중단된 남북대화
1972년 남북 동시에 발표된 자주적인 통일 노력에 대한 성명은 남북한 국민들에게 통일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했다. 그러나 남북대화는 다음 해인 1973년 북한의 일방적 대화 거부로 중단되고 만다. 남북은 또 다시 대치 상황으로 돌아간다.
기대는 한 순간에 무너지고 7.4 공동성명은 그저 하나의 문건으로 역사 속으로 묻히게 된다.

북한의 구호물자 제공 제의로 남북 대화 재개
남북 간 대화는 한 동안 중단됐다.
그러다가 1984년에 남북 관계에 변화를 주는 새로운 사건이 발생한다.
북한이 남한의 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한 것이다. 1984년, 남한의 집중폭우로 3백 5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는다. 이에 북한의 적십자사가 의외로 구호물자 제공을 제의하면서 남북 대화가 다시 시작된다.
북한의 구호물자가 1984년 9월 29일 판문점, 인천, 북평항을 통해 남한에 전달돼 40년 만에 첫 물자 교류가 이뤄지고 남북 대화가 시작됐다.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남북 관계 개선의 계기
1980년대 들어서 남한은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1982년 1월 국정연설에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을 제시하고 2월 1일 남북한 공동사업의 구체적 시범 사업들도 제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힘쓴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거부한다.
1983년 10월 9일에는 미얀마를 공식 방문 중인 한국 정부 사절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버마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이 북한에 의해 저질러지면서 남북 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남한 수재민들을 위한 구호품 제공이 다시 남북 대화 재개의 계기가 된다.
1984년 북한의 구호품 제공을 계기로 남북 대화가 이어져 1985년 9월에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도 이뤄지는 등 남북 대화의 결실이 이어진다.
남북대화는 이후에도 간간히 이어지다 중단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2014년 이후 남북 관계는 경색되고 남북 대화는 거의 단절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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