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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 31부-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2015-08-11

제 31부-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1991년 9월 18일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하게 된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남 과 북이 둘로 나뉘어 한반도에 남과 북 각각 다른 정부가 설립되고 남북 분단의 비극이 시작된다. 이후 한국은 끊임없이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공식 인정받는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북한과 북한을 지지하던 공산국가들의 방해로 오랫 동안 유엔 회원국이 되려는 한국의 꿈이 이뤄지지 않다가 동서 냉전이 종식되면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유엔 회원국이 됐다. 유엔 회원국이 되면서 한국은 유엔 내에서 세계 평화와 빈민국 원조 등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한다. 그동안 원조를 받던 입장에서 주는 나라로 변화하는 전기가 된 한국의 유엔 가입, 그 과정과 의미를 재 조명한다.

북한의 반대와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한국의 유엔가입 좌절
1948년 남북한이 분단된 후 한국은 유엔 회원국 가입을 최우선의 외교 목표로 세우고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반대 공세와 북한을 지지하는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한국의 유엔 가입은 번번이 좌절됐다.
한국의 유엔 가입 노력은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에 다시 이어진다. 1973년에는 유엔의 날을 지정해 매년 성대한 기념식을 여는 등 유엔 가입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펼친다. 그러나 한국의 노력은 매번 상임이사국이던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결실을 이루지 못한다.

유엔 가입 둘러싼 남북한 대립 1980년대까지 계속
북한은 한국이 유엔 가입을 하게 되면 한반도에 영원히 두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격렬히 반대했고 1971년에는 중국이 상임이사국이 되면서 소련과 중국이 함께 거부권을 행사해 한국의 유엔 가입이 더욱 어려워졌다.
유엔 가입을 둘러싼 남북 대립은 1980년대 말까지 계속됐다.

냉전 시대 종식으로 국제 사회 분위기 변화
1980년대 말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린다. 국제적으로도 동서간의 화해 분위기가 퍼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한국은 1989년 헝가리와의 수교를 시작으로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공산권과의 수교를 이어간다. 1990년에는 마침내 소련과도 국교를 수립한다. 한국과 소련의 국교 수립에 대해 북한은 격렬히 비난한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되고 국제 사회 분위기도 한국의 유엔 가입을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자 북한은 스스로 고립을 피하기 위해 그간의 태도를 바꾼다.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으로 새로운 전기 마련
1991년 9월 18일 마침내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 회원국이 된다.
유엔 회원국 가입을 계기로 한 때 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유엔 가입 후 한국은 전 세계 평화를 위한 유엔의 노력에 적극 동참한다. 5년 만에 비상임이사국이 되기도 했다. 1993년부터 캄보디아-소말리아 등지에서 활동하는 유엔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유엔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6년에는 반기문 제 8대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해 한국 출신 유엔 총장 시대를 열었다. 유엔 회원국들의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유엔 회원국들을 돕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한국은 유엔 회원국 중 모범 회원국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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