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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종의 리더십

2012-12-22

훈민정음 창제 등 찬란한 민족 문화를 꽃 피우며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왕으로 오늘날까지 칭송되고 있는 세종의 리더십에 대해 건국대학교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얘기를 나눈다.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
세종의 리더십은 태조나 태종의 리더십과는 차별이 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태종의 경우 위엄이 넘치고 과감성이 돋보이는 그런 리더십이라면 세종의 경우 부드러우면서 자신의 주관을 갖고 국정을 원만하게 운영하는 스타일 이라고 할 수 있다. 품성이 온화하고 겸손하며 늘 신하와 백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여론을 수렴하는 한편 재능을 가진 인재들을 골고루 등용하고 그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최대의 성과가 날 수 있도록 한 공적이 돋보인다. 함께하는 정치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 인재 등용
세종 시대에는 유독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음악의 박연, 재상의 표본인 황희 정승, 김종서와 같은 무관 , 장영실과 같은 과학자 등 많은 인재들이 많은 업적을 남긴 시기가 바로 세종 집권 기간 이었다. 이런 인재의 배출은 우연이 아니고 세종의 포용력, 인재를 발탁하는 안목, 그리고 그들이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점을 알 수 있다.

따뜻한 포용력
세종의 따뜻한 포용력은 여러 점에서 알 수 있다. 태종이 양녕 대군을 세자에서 내리고 세종을 세자에 책봉할 때 가장 반대한 인물이 황희 정승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즉위 후 황희 정승을 발탁해 많은 일을 하도록 하였다. 또 폐위 된 양녕 대군을 비롯한 형제들에 대해서도 따뜻한 애정으로 끝까지 보살펴 신하들에게 감동을 준 기록이 실록에 잘 나와 있다.

자주, 민본, 실용
세종은 ‘자주, 민본, 실용’이라는 시대정신을 가장 잘 실천한 왕이다. 조선의 고유 문화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우리의 글인 한글 창제에서 꽃을 피웠고 토지세법을 개정할 때 백성들의 여론을 잘 살피는 등 백성 위주의 정치를 펼쳤으며 해시계,물시계, 측우기 등을 발명해 실용적 측면에서도 다양한 공적을 이뤘다. 세종은 조선 역사상 아니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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