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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종, 포용의 리더십

2012-12-29

조선의 최고 왕을 꼽으라면 단연 세종 대왕을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몸소 느끼고 그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정책을 펼치며 조선의 문화, 과학을 한단계 끌어올린 성군으로 기록된다. 추진력이 있으면서 신하와 백성들을 포용한 세종의 리더십에 대해 건국대학교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살펴본다.

백성들을 위한 훈민정음 창제
세종의 업적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훈민정음’ 창제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백성들이 중국의 한문이 어려워 일상생활에서 쓰지를 못하고 또 해석도 못해 억울한 일이 있어도 글로 올리지도 못하는 딱한 실정을 안타깝게 여긴 것이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동기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서문에서 잘 느낄 수 있다.

훌륭한 문화유산, 한글
한글은 자음과 모음의 조화, 구강 구조를 염두에 둔 과학적인 문자 등 아름다움과 실용적인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라고 할 수 있다. 한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세종은 성삼문, 신숙주 등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 집현전에서 집중적인 연구를 하도록 하여 마침내 우리의 문자를 만들었다. 외래 문자와 중국 한문을 연구하도록 하고 특히 학자들을 중국에 파견해 연구를 하도록 지원하는 등 임금으로서 학자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

반대 목소리도 높아
당시의 관리들과 학자들의 반대 목소리도 높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한자를 숭상하는 경향이 있었고 보수적이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 하였다. 또 중국과의 외교적인 마찰도 우려하는 소리가 있었다. 김문, 정찬손 등이 주축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는데 이에 대해 세종은 강경한 어조로 큰 것을 보지못하는 어리석음을 성토했다. 중국에 대해 사대적인 풍조가 있던 당시 상황에서 세종의 한글 창제는 우리의 자주성을 바로 세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한글 창제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결실을 거두기까지엔 옳은 일을 위해 나아가는 세종의 강력한 추진력이 가장 큰 원동력이다.

한글 창제 이후 활발한 보급 노력
한글이 창제된 후 세종은 다양한 한글 편찬 사업을 통해 일반 백성들이 쉽게 한글을 접하고 익힐 수 있도록 한다.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등을 한글로 펴내고 기존의 삼강오륜 등을 한글로 풀어쓴 한글언해본들을 펴내 한글로 된 책을 많은 백성들이 읽고 지식을 넒혀가도록 힘쓴다. 한글 창제 과정을 통해서 본 세종의 리더십은 포용력 그리고 강력한 추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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