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역사

고려 문벌 사회의 특징

2013-09-21

고려 시대를 문벌 사회 혹은 문벌 귀족 사회라고 한다.
서양의 귀족 사회를 연상시키는 이 표현이 적절한지, 고려 문벌 사회와 서양 귀족 사회를 비교해 그 특징을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조명한다.

서양의 귀족 사회와 공통점 있으나 같지 않아
서양의 귀족 사회는 사회의 부와 권력을 장악한 특정 집단이다. 또 그 직위를 그대로 자손에게 물려준다.
고려의 문벌 사회는 학식이 높은 집안, 국가에 공이 높은 집안, 또 왕실과 혼인 관계가 있는 집안들이 주를 이루면 사회적 특혜를 받았다. 그러나 한 가문의 부와 권력이 그대로 자손들에게 이어지는 서양 귀족 사회와는 차이가 있다.
고려의 경우 문벌 사회의 자손들이 관직 진출 등에 약간의 특혜가 있었으나 그대로 대물림된 것은 아니다.

고려사에도 문벌 자손에 대한 혜택 언급
고려 사회에서 문벌 가문 자손들에 대한 관직의 혜택에 관한 언급이 고려사에 나온다.
현직이나 퇴직한 재상의 친아들은 종 6품에 해당하는 직책을 부여하고 친손자나 외손자는 정 8품에 준하는 직책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관직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선 특혜를 부여하지만 일단 관직에 들어가서 승진하는 것은 본인들의 능력에 따른 것이다.

통일신라의 골품제에 비해 세습 완화
고려의 전 왕조인 통일신라의 골품제는 서양의 귀족제도와 그 성격이 비슷하다. 신분에 따라 철저히 오를 수 있는 직위나 직책이 한정돼 있었고 신분 세습이 가장 강했던 시기가 통일신라시대다.
반면 고려 시대의 문벌들에게 토지가 주어지고 또 자손들에 대한 음서제가 있었으나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고려시대를 문벌 귀족사회라고 부르는 것은 적합하지 않고 문벌이 특혜를 받은 문벌 사회라고 정의하는 것이 적합하다.

문벌의 폐단이 고려 중기 사회 혼란 초래
문벌에 대한 특혜가 상대적으로 혜택을 못 받은 집단들의 반발을 초래해 고려 중기에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 사회적 불화와 혼란의 배경이 된다.
고려 사회의 문벌은 전적인 혜택이 주어지거나 모든 권력이 세습되는 서양의 귀족과는 차별이 된다. 그러나 특정 문벌에 대한 특혜가 사회적으로 팽배한 시대였고 이러한 것이 사회 갈등 요인이 됐다.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