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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왕조의 제도적 기반

2013-10-05

후삼국을 통일하고 왕조를 세워 500년 정도 오랜 세월 유지된 고려 왕조의 안정은 제도적인 기반에 있다.
삼국을 통일한 통일 신라와는 다른 고려 왕조의 사회적 제도의 핵심 내용을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조명한다.

실질적인 흡수 통합
통일 신라가 물리적으로 삼국을 통일한 것에 비해 고려 왕조는 후삼국을 실질적으로 흡수 통일했다고 할 수 있다.
통일 신라는 무력으로 삼국을 정복했지만 통일 이후에도 이전 신라의 진골 제도를 그대로 유지해 고구려, 백제의 인재와 문화를 통합하는데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에 호족 세력의 도움으로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건국 이후 적극적으로 호족 세력들을 규합해 왕정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인재들을 흡수 통합하고 특유의 개방, 다원 정책으로 실질적인 통합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지방 호족 세력들을 통합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각 지역에서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지방 호족 세력들이었다. 태조는 고려 건국 초기 이들 호족 세력들에게 권력을 분배하고 적극적으로 왕정에 참여시켜 왕권을 강화하면서 자연스럽게 화합, 통합을 달성했다. 호족연합세력은 지방 세력들을 연합시켜 새로운 통합시스템을 구축했다.

본관 제도 확산
세력이 있는 가문에게 본관과 성을 부여하는 제도는 통일 신라 때도 존재했다.
그러나 일반 서민, 호족들에게도 본관과 성을 부여하는 제도가 확산된 것은 고려 때의 일이다. 후삼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협조한 세력들에게 거주지를 본관으로 하는 새로운 성을 부여했다.
'토성분정‘ 제도라고 한다. 한 예로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할 때 옛 신라지역의 지배 세력이었던 김행이 안동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건국 후 930년에 태조 왕건은 김행에게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권씨라는 성을 부여했다. 지금 남아있는 안동 권씨, 안동 장씨, 안동 김씨가 그 때 부여받은 본관과 성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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