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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시대 고급 제품 생산의 사회적 배경

2014-04-12

고려의 귀족문화, 중앙문화가 남긴 유물들은 고려청자, 나전칠기 등에서 볼 수 있는것처럼 세계적으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고려시대에 이런 세계 수준의 문화 산물이 생산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에 대해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진단한다.

예술성, 조형미에만 초점
그간 역사학자들 문화재 연구가들은 고려시대가 남긴 유산에 대해 예술성, 조형미 등에만 초점을 맞춰 연구하고 소개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없듯이 고려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연구함에 있어 그 사회적 배경에 대해 연구하고 분석하는 일은 더욱 더 중요하다.

귀족들의 수요에 맞춘 생산
한국의 역사상 가장 많은 고급문화 유산을 남긴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라고 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진골 귀족세력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문벌귀족 세력이 있었다.
이들 귀족들의 세력이 막강함에 따라 다양한 고급 제품들을 요구했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 하층민들이 열심히 생산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문화유산들이 탄생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생산 품목에 따른 전문 생산 지역 분류
고려시대에는 작은 마을 단위인 ‘소’가 250여 개 있었는데 각 소마다 생산하는 품목이 달랐다.
금소,은소,동소, 철소에서는 광물을 생산하고 지소에서는 종이를 생산하고 또 와소에서는 기와를 생산하고 곽소에서는 미역을 생산하는 것처럼 많은 소가 생산 품목을 나누어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주로 서해안 지역에 생산지역 집중
고려청자는 주로 전라도 강진과 전북 부안에서 생산됐다. 또 종이는 전라도 전주와 남원에서 생산됐고 차(茶)는 전라도 보성과 강진에서 생산했다.
이처럼 고려시대 주요 특산품은 서해안을 끼고 있는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주로 생산됐다. 그 당시에 개경으로의 물품 운송이 해로를 따라 이뤄졌고 또 청자 제조 기술 등 선진 문물도 중국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이다.
고려에 비해 조선시대에는 특산품 생산 지역과 품목이 도자기, 그림 등에 한정됐고 국내 소비용이었다. 반면 고려의 생산품은 활발한 교역에 힘입어 멀리 다른 나라에까지 소개돼 국제적인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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