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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일본인들의 고려사 연구

2014-04-19

일제 강점기 동안에 일본인들의 식민지사학이 한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인들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비하한 연구가 그대로 한국사에 반영된 부분들이 많았다.
해방 이후에 일본인 사학자들은 그들의 한국사를 재조명해 수정된 한국사에 대한 연구 결과를 주장했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사로 남은 부분도 있다. 일본인들의 고려사 연구 그 배경과 내용, 문제점 등을 국민대 국사학고 박종기 교수와 함께 진단한다.

해방 후 일본인들의 고려사 연구 식민사학과 유사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연구한 한국사는 주로 조선사에 집중됐다. 한국사를 비하해 일본의 역사가 우월하다는 것을 주장하는데 초점이 맞춰있었다.
해방 이후 그들은 조선사를 비하한 부분의 비논리적인 것을 보완하기 위해 조선 이전인 고려사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했다. 고려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무신정변 이전의 고려 전기를 미개해 후진 사회로 규정하는데 연구의 초점이 있었다.

적장자 단독 상속론
일본 사학자들이 주장한 고려 전기 사회의 핵심 중 하나는 적장자 단독 상속론이다.
즉 장자만이 토지를 상속받아 다른 아들들이나 딸은 토지가 없어 토지를 상속받은 장자의 집에서 일을 거들며 살았기 때문에 자연히 대가족 제도가 됐으며 미개한 원시 사회에 머물렀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군현제의 신분적 편성
일본인들이 주장한 또 하나의 이론은 고려 전기는 군현제를 신분에 따라 편성해 자유로이 이동할 수 없는 미개 사회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행정제도도 중앙에서 토지를 많이 가진 지방 호족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통치하는 사회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한국사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1980년대 이전까지 한국사학자들은 이런 일본인들의 고려사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한국사로 기록했다. 반성해야할 부분이다.
1980년대 고려의 묘들이 많이 발굴되면서 고려전기에도 부모와 자녀 3~4명으로 구성되는 핵가족 시대였다는 점 등이 증명되면서 일본사학자들의 허구성이 드러났다. 이후 한국사학자들의 각성과 함께 새로운 연구로 고려사가 상당 부분 재정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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