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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의 등거리 실리외교

2014-06-21

거란, 여진족, 송나라 등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유지하며 실리를 추구한 고려의 외교 정책은 한국의 역사상 보기 드문 실리외교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대주의가 아닌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며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외교를 취한 고려의 실리외교, 그 내용을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알아본다.

거란이 차지한 의주 지역 점령거란이 쇠퇴하고 1115년에는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웠다. 고려는 거란과의 강동6주 반환을 둘러싸고 100년간의 전쟁을 벌였다.
결국 고려는 강동6주를 지켰지만 전쟁이 끝날 당시 거란은 전략적 요충지인 지금의 신의주 땅인 보주 지역을 점령하였다. 금나라가 건국한 후 고려는 금나라와 등거리 외교를 유지하며 고려의 땅인 보주 지역을 다시 차지하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에 금나라는 고려가 직접 침공해서 그 땅을 되돌려 받으라고 했다.
마침내 1117년 금나라가 거란을 침공한 사이에 고려는 거란의 보주 땅을 공격해 다시 찾았다.

조선의 광해군 외교 정책과 비슷고려의 실리외교는 조선시대 광해군의 외교정책과 비슷하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와의 등거리 외교를 유지하는 한편 만주지역의 청나라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한 나라에 치우치지 않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친선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고려의 실리외교와 닮았다.

송나라와 금나라 사이의 등거리 외교1127년 금나라는 송나라를 침공해 송나라의 황제를 포로로 데려간다. 1128년 송나라는 금나라에 포로로 있는 황제를 구하기 위해 금나라를 공격하려 한다.
이 때 송나라는 바다를 통해 금나라를 침공하기 위해 고려에게 길을 터주기를 요청하는데 고려는 거절한다. 금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해서다. 송나라가 고려를 통해 금나라를 치면, 금나라 또한 고려를 통해 송나라를 공격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전형적인 실리 외교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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