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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시대 ‘원 간섭기’

2014-07-05

고려시대의 기본적인 대외 외교정책은 등거리 외교, 실리 외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쿠빌라이가 집권한 몽골, 즉 원나라 이후 고려는 원에 조공을 바치고 원의 지배를 받는 관계로 변해 대외 관계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이를 식민사관 학자들은 굴욕적 외교라고 평가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살펴본다.

몽골, 6가지 요구 수용하지 않으면 침략, 정복징기스칸이 이끄는 몽골은 전 세계 정복을 목표로 다른 나라에게 6가지의 요구를 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무자비한 침략과 정벌로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했다.
몽골은 고려에게도 왕족을 인질로 보낼 것, 호구조사 결과를 보고할 것, 몽골에 식량과 조세를 납부할 것, 군대 인력을 차출할 것, 또 파견된 몽골 감독관의 지시에 따를 것 등 6가지 요구를 했다. 고려는 이를 거부하고 1225년에 파견된 몽골 사신의 피살을 계기로 1231년부터 몽골의 침략에 대항해 30년 간의 전쟁을 치뤘다.

쿠빌라이 집권 후 몽골의 지배 시작30년간의 고려의 몽골과의 전쟁은 1260년 쿠빌라이 집권 후 원나라가 수립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원나라와의 주종 관계로 조공을 바치고 세자를 인질로 보내는 등 몽골과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됐다. 일본 식민지사관에 입각한 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굴욕의 역사로, 또 수치스런 역사로 평가하고 있다.

고려의 국익 지키려 노력고려는 당시 세계를 지배할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과 국력을 가진 원나라를 상대로 비록 지배하에 놓였지만 여전히 국내적으로는 팔만대장경을 완성하는 등 문화 발전에 노력하며 민심을 모으고 대외적으로도 원나라에 대해 국익을 위한 주장을 펼치는 등 자주적인 노력을 한 기록들이 있다.
몽골은 끊임없이 고려의 왕족을 몽골의 인질로 보낼 것, 수도를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것 등을 요구했으나 고려는 사신을 보내 먼저 고려에서 몽골군을 철수할 것 등을 요구해 몽골 국왕이 이를 받아들이는 등 고려는 몽골의 요구를 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한 기록들이 많다. 결국 고려는 몽골이 요구한 지 20여 년 만인 1270년에야 수도를 개경으로 옮긴다.

성리학 수용 등 긍정적인 측면도원간섭기에 고려는 성리학을 적극 수용해 국가 정책 수립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부정부패를 없애고 신진사대부 등장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등 원 지배 하에서도 고려는 국익을 위해 부단없는 노력을 계속한 것은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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