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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성종의 포용 정치

2014-11-29

고려의 6대 왕인 성종은 어질고 지혜로운 정치를 펴 다방면에서 고려 발전의 기틀을 완성한 업적을 세운 왕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종의 정책과 정치 그리고 업적에 대해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얘기를 나눈다.

정치 제도, 군사 제도 등 전반적인 틀 완성성종은 고려가 건국 초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 즉위해 고려의 정치 제도와 군사 제도 그리고 제사 제도, 의례 정비 등 모든 면에서 안정적으로 발전의 틀을 완성해 고려의 도약의 발판을 완성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려사에서 이재현은 종묘를 세우고 사직단 제도를 마련하고 학교를 넉넉히 세우도 어려운 백성들을 돌보는 등 고려의 태평성대를 이룬 왕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즉위 과정은 불안정성종의 즉위 과정은 불안정했다.
광종 사후에 그의 아들 경종이 일찍 죽고 경종의 아들 또한 2살 밖에 되지 않아 경종의 사촌인 성종이 대신 즉위했기 때문에 왕실의 폭 넓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로 인해 성종은 광종의 외가 쪽인 충주 유씨 세력의 지원을 받았다. 즉위 후 광종의 개혁, 개방 정치를 계승하려 노력했다.

비판 세력도 수용, 포용 정치 펼쳐최승로 등 유학자들은 광종의 정치를 표방하는 성종에 대해 비판을 했다. 그러나 성종은 이런 비판 세력들의 의견도 수용해 포용 정치를 펼쳤다.
최승로 등 유학세력 외에 서희,이지백과 같은 고려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관료들의 의견도 경청하고 폭넓게 관리에 등용했다.

개방 정책으로 외래 문물 수용, 전통 확립으로 민심 결집성종은 유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과감한 개혁 개방 정책을 펼치는 한편, 전통을 고수하는 학자들도 등용해 그들을 통해 민심을 결집하는데도 힘썼다.
그 결과 고려는 문물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한편 거란의 침입에도 민심의 결집으로 지혜롭게 물리치는 등 대내외적으로 강력한 국가 건설의 토대가 마련된 시기가 성종이 집권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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