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역사

고려 시대 영토 분쟁

2014-12-13

오늘날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토 분쟁이 계속되고 있듯이 고려 시대에도 영토 분쟁이 있었다.
바로 거란과의 ‘보주’ 즉 신의주 지역을 두고 벌어진 치열한 영토 분쟁이다. 보주를 둘러싼 고려와 거란과의 분쟁에 대해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얘기를 나눈다.

거란이 고려 국토로 허용한 강동6주 반환 요구거란은 993년과 1010년 두 차례 전쟁을 치른다.
치열한 전쟁 끝에 일종의 회유책으로 거란은 고려는 거란에 항복을 전하는 사신을 보내기로 약속하고 거란은 그 대가로 압록강 일대의 강동 6주를 고려가 점령하도록 허용한다. 두 차례의 전쟁이 끝난 후 고려는 약속을 어기고 거란에 사신을 보내지 않는다. 이에 분개한 거란이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거란, 강동 6주의 요충지 ‘보주’ 점령강동 6주의 반환을 끈질기게 요구하던 거란은 1014년 고려를 침공해 보주를 점령한다. 이후 고려는 거란과 전쟁에서 다시 보주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공방전을 벌였다.
두 나라가 보주를 두고 치열한 전쟁을 한 까닭은 ‘보주’가 중국으로 가는 관문이자 동아시아 무역의 요충지로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고려, 거란에 승리했지만 보주는 거란이 점령고려는 거란과 긴 전쟁 끝에 승리했지만 거란은 요충지 ‘보주’를 사수했다. 이후 고려는 틈만 나면 요주 반환 요구를 했다. 1031년 헌종이 죽고 덕종이 즉위 직후 강경파인 곽언과 왕가도 등이 득세하면서 거란에 대한 강경책을 내세웠다. 거란을 침략해 보주를 탈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반대 세력도 많았다. 이후 고려의 거란과의 영토 분쟁은 계속되고 고려 내부의 정치 상황과 거란의 성종이 죽으면서 거란 주변의 정세도 변화한다.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