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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허리케인으로 개관이 연기된 자유의 여신상에 얽힌 역사

2012-12-15

미국의 상징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자유의 여신상입니다.
이 여신상의 머리에 쓴 관까지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데 지난 1년 동안 내부 수리를 위해 출입이 금지돼 있었답니다.
올 연말 수리가 완료될 예정이었는데, 최근 허리케인 샌디로 인한 피해 때문에 개관이 다시 연기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 자유의 여신상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미국 독립전쟁 1백 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것이라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나라가 아닌 프랑스가 이런 선물을 준 것일까요.
흔히 프랑스대혁명의 나라 프랑스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응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유의 여신상 기증을 제안할 당시의 프랑스는 이른바 파리코뮨이라고 하는 진보주의 운동을 탄압하고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에 열중하던 때였습니다.
더구나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 선언’이 아니라 ‘영국에 대한 독립전쟁’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에 프랑스의 본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북아메리카 식미지 개척에서 영국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캐나다 퀘벡 지역을 선점한 프랑스는 남으로 땅을 넓혀 미시시피강 하구에 이르는 넓은 식민지를 차지합니다.
프랑스는 이 식민지를 뉴프랑스라고 불렀습니다.
미시시피강 하구의 루이지애나 주는 국왕 루이14세, 뉴올리언즈 시는 본국의 오를레앙을 본떠서 지은 이름입니다.
그런데 뒤늦게 영국 이주민들이 북아메리카 동해안에 밀려들기 시작합니다.
프랑스는 이들을 몰아내려고 시도했지만 그것은 영국의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결국 18세기 중반에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든 영국이든 외부 이주민이라는 점은 같았습니다.
원주민은 이른바 인디언들이었죠.
그런데 식민 정책에서 프랑스와 영국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프랑스는 인디언들과의 공존을 모색했지만, 영국 이주민들은 원주민 땅을 빼앗고 몰아냈습니다.
그래서 원주민은 프랑스 편에 서서 영국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의 역사책에 이 전쟁은 프렌치-인디언전쟁으로 명명돼 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영불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전쟁의 결과 프랑스가 패했고 북아메리카는 영국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절치부심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습니다.
그러던 참에 영국 식민지 주민들이 본국에 대해 독립전쟁을 일으킵니다.
프랑스는 이때다 하며 이주민 편에 가담하여 영국과 다시 한 번 겨룹니다.
과연 독립전쟁이 승리하였고 프랑스는 이전의 패배를 설욕했다는 기쁨을 맛봅니다.
이후에도 프랑스는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기를 원했고, 그 바람은 독립전쟁 1백 주년에 자유의 여신상을
기증하는 데까지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의 그림자가 얽혀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대해, 한국에서는 잘못 알려진 부분도 있습니다.
우선 이 상의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추는 자유’이고 미국인들은 편하게 ‘자유의 상’이라고 부릅니다.
여신상이라는 말은 일본 사람들이 제멋대로 갔다 붙인 것인데 그대로 받아들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상은 머리에 7개의 뾰족한 뿔이 있는 관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햇빛의 퍼지는 모양을 나타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상의 주인공은 그리스의 태양신 헬리오스입니다.
왜 하필 태양신 헬리오스일까요.
미국을 건국한 조지 워싱턴 등이 로마 문명에 심취한 것을 알고 있던 프랑스 조각가 바르톨디가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 헬리오스를 소재로 삼은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역사 토막상식, 아하 그렇구나!
자유여신상 개관 연기 소식을 계기로 자유여신상에 얽힌 역사를 되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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