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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말리아가 겪은 비극적인 역사

2013-09-28

최근 아프리카 케냐의 한 쇼핑몰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3백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피해자 중에는 우리 한국인도 포함돼 있어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건을 일으킨 자들은 소말리아의 급진 테러조직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소말리아 하면 우리 선박을 납치하곤 하는 해적으로 익숙합니다.
소말리아에서는 왜 이렇게 테러가 기승을 부리는 것일까요.

소말리아의 혼란과 테러는
바로 19세기 말부터 제국주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로 전락한 역사적 경험과 직접 연결돼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경험 때문에
분단과 전쟁이라는 혹독한 비극을 경험한 것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의 동부에 마치 코뿔소 뿔처럼
우뚝 솟아나온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예로부터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부릅니다. 이곳은 지정학적으로 홍해에서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길목이어서 고대 이래 해양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특히 7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이슬람 세력이
인도양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에
소말리아 민족은 그 일익을 담당하면서 크게 부흥했습니다. 오늘날 해적들은 바로 그런
유산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유럽 국가들이 제국주의를 앞세워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집어삼키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민족들이 그랬듯이,
소말리아도 그 파도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소말리아는 그 지정학적 가치가 너무 컸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그 결과 소말리아는 남북으로 분단돼
북은 제국주의 최강대국 영국이,
남은 신흥 제국주의 국가인 이탈리아가 차지했습니다.
이후 1960년에 독립하기까지
북부와 남부는 영국과 이탈리아라는
상이한 체제와 제도 아래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독립한 직후의 소말리아는 영국식도 이탈리아식도 아닌
소말리아식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대 문명을 스스로 일구기도 전에
식민지로 전락했던 그들에겐 힘에 겨운 과제였습니다.
더욱 불행한 것은 소말리아 민족이 살던 땅의 일부를
이웃 에티오피아와 케냐에게 빼앗긴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에티오피아와 케냐에 대해 테러를 저지르는 것은
이러한 영토 수복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특히 많은 땅을 빼앗아간 에티오피아는
당시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러자 소말리아는 그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에 접근해
친미국가가 되었습니다.
친미국가 소말리아는 군부 출신의 독재자가 통치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체제가 허물어지자
미국에 기대 유지되던 독재정권도 무너집니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였지만,
불행하게도 소말리아인들에겐 그 기회를 살릴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근대 이전, 아프리카에는 여러 부족들이
부족 단위로 살아왔습니다.
근대적인 의미의 국가체제라는 건 존재하기 않았습니다.
그러다 영국식 체제와 이탈리아식 체제를 강요받다가
어느 날부터 독재 치하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갑자기 대의제 민주정치와 3권분립 같은
근대적 체제를 스스로 운영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우왕좌왕하던 그들이 기댈 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부족 관계뿐이었습니다.
결국 국가체제라는 근대적인 틀을 갖추었지만,
그 내용은 각 부족들이 서로 이권을 놓고 다투는 정글로
채워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뉴스를 통해 익히 보아온
내전과 정치혼란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아선상으로 내몰린 주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약탈과 해적질을 마다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역사 토막상식, 아하 그렇구나!
소말리아인들이 케냐에서 저지른 테러 만행을 보며
소말리아라는 나라가 겪은 비극적인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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