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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구세군의 기원

2013-12-21

해마다 연말이 되면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풍경이 있습니다. 바로 종을 울리며 등장하는 빨간 자선냄비의 주인공 구세군입니다.
올해에도 지난 11월 27일 서울에서 시종식을 가진 자선냄비는 연말까지 전국 350여 곳에서
55억 원을 목표로 기부금 모금에 들어갑니다.
이러한 구세군은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구세군의 창시자는 영국인 목사 윌리엄 부스입니다.
그는 1865년 영국 런던의 빈민가인 이스트엔드에서
구세군 교단을 창단했습니다.
부스가 처음 만든 교단의 이름은 구세군이 아니라
그리스도 선교회라는 평범한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펼친 선교 사업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선교 대상으로 삼은 이들은 알콜과 마약 중독자,
거리의 창녀, 범죄자 등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성공회나 장로교 등 주류 교단들은
이런 빈민층을 선교의 주 대상으로 삼을
생각조차도 못하던 때였습니다.
부스는 산업혁명을 이루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영광의 빅토리아 시대를 구가하는 영국이 실제로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내실이 곪아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쓴 책이 [암흑의 영국과 그 출구]였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른바 ‘선진국’ 영국과
‘후진국’ 남아프리카를 비교하면서,
실제로 두 나라 민중들의 삶의 질을 보면
영국 사람들이 결코 우월하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사실 당시 이런 점을 직시한 이는 부스만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1848년에 [공산당선언]을 발표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바로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극심한 빈부격차라는 사회적 질병을 앓고 있던 런던에는
사회주의의 바람이 거세고 불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현실에서 부스는
사회주의자들과 현실인식은 공유했지만,
그 해결책은 종교에서 찾았습니다.
즉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물질을 베풀음으로서
구제한다는 발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것이 ‘백만 인을 위한 음식’이라는
이름의 무료급식소였습니다.
부스는 이러한 구제 사업을 펼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기금을 모금했습니다.
부스의 선교단이 구세군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878년에 일어난 작은 일에서 비롯됐습니다.
어느날, 그가 비서에게 기부금을 부탁하는 편지를
구술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용군이다’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의 아들이 말했습니다.
‘의용군이라뇨, 저는 의용군이 아니라 정규군이에요.’
라고 말이죠.
아들의 말에 착안한 부스는 의용군 즉
volunteer army라는 구절을 salvation army 즉 구세군으로 바꾸도록 했습니다.
부스는 구세군이라는 명칭이 썩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명칭만이 아니라 교단의 조직 자체를 군대식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정식 군대처럼 깃발을 만들고, 군가식의 노래를 짓고,
군복과 비슷한 제복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리고 교단의 위계도 사령관, 사관, 병사라는
명칭으로 불렀습니다.
현재 한국 구세군 총본부는 구세군 대한본영이라고 하고
그 최고책임자 직위는 사령관입니다.
일반 교회의 목사에 해당하는 직위는 사관인데,
구세군사관학교의 교육을 이수하고 일정한 기간
구세군에서 복무해야 자격을 얻습니다.
부스의 구세군은 영국의 제국주의가 팽창함에 따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1908년에 영국인 로버트 호가드가
사령관으로 부임했습니다.
우리나라 구세군의 역사가 어느덧 100년을 훌쩍 넘었습니다.
역사 토막상식, 아하 그렇구나!
2013년에도 목표한 자선기금을 훨씬 뛰어넘기를 바라며,
구세군의 역사를 되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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