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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칠레 현대사

2013-12-28

지난 15일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여성인 미첼 바첼레트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여성 대통령이니
바야흐로 세계는 여성 정치인의 시대인가 봅니다.
그런데 신임 칠레 대통령 바첼레트의 이력에서
눈에 띠는 것이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피노체트 독재정권에 의해 처형당했고, 그녀 자신도 정보기관에 붙잡혀가 가혹한 고문을 당한 전력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은 피로 얼룩진 칠레 현대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다른 남아메리카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칠레 역시 16세기 스페인인들이 오면서
세계사에 등장합니다.
그 이전엔 우리가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원주민들이
잉카 제국을 이루며 살고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면서 잉카제국은 멸망했고,
원주민들은 하층계급으로 전락합니다.
식민지배가 장기간에 걸쳐 유지되는 과정에서
칠레 현지에서 태어난 스페인인들이
인구의 다수를 이루게 됩니다.
이들을 크리오요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본국 출신자들이 토지를 차지하고
권력을 독점하는데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고,
결국 독립운동을 일으킵니다.
19세기 초에 이들에 의해 칠레는 독립을 쟁취합니다.
칠레는 독립은 했지만, 원주민과 상당수 크리오요들은
권력층의 경제적 착취 아래에서
가난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더구나 집권층은 서로 파벌을 나누어 권력투쟁을 일삼아
정치는 늘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의식 있는 크리오요들이
개혁을 외치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 1960년대 말에 크게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살바도르 아옌데였습니다.
그들은 가진 자들의 전횡에 맞서서
사회주의를 주창했습니다.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 두 사람은 연합해서
아옌데로 후보를 단일화했고
마침내 아옌데가 근소한 차이로 보수 세력을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아옌데의 당선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왜냐 하면 당시까지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부가 집권한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권한 아옌데는 사회주의 정책에 따라
칠레의 대표적 산업인 구리 광산을 국영화합니다.
그리고 은행을 비롯한 주요 기간산업도 착착 국경화합니다. 그리고 물가는 동결시킨 가운데 임금을 대폭 인상했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 대한 우유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실시했습니다.
당연히 칠레 민중들은 아옌데 정부를 열렬히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토지와 자본을 장악하고 있던 부유층은
아옌데의 정책에 노골적으로 비토를 놓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사회주의 확산을 우려하는 미국도
아옌데의 실각을 노리며 경제봉쇄 정책을 폅니다.
내외의 비토로 결국 칠레 경제는 재정적자에 허덕이게 되고, 집권 2년 차가 되자 100%라는
높은 인플레를 기록하게 됩니다.
경제가 휘청거리자 사회불안이 확산되고,
아옌데 정부가 흔들리게 됩니다.
이때 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군부가 쿠데타를 결행합니다.
그가 바로 피노체트였습니다.
1973년 9월 11일, 쿠데타군이 대통령궁으로 조여오자
아옌데는 “저는 역사적 순간에 서서 민중의 충성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제 목숨을 바치려 합니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라디오 연설을 한 뒤 끝까지 항전하다
목숨을 잃습니다.
이후 집권한 피노체트는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무조건 체포하고 감금하고
고문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그가 집권한 17년 동안 무려 13만여 명이 체포되었고,
3천 명 이상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그 가운데 바첼레트 대통령의 아버지도
끼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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