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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가톨릭교회에서 추기경이 차지하는 위상

2014-01-25

지난주에 로마 교황청이 염수정 서울대교구장을
추기경으로 임명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로서 우리나라는 김수환, 정진석에 이어
세 번째 추기경을 배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는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경사스런 일이었을 텐데요,
그만큼 추기경이라는 직책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추기경은 가톨릭에서
어떤 위상을 갖는 직책일까요.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 위계는 아래로부터
사제, 주교, 대주교, 교황의 순으로
피라미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위계질서 안에 추기경이라는 직책은 없습니다.
추기경의 영어명은 카디날입니다.
이는 카르디날리스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인데,
이 단어는 경첩을 뜻하는 라틴어 카르도가 어원입니다.
물론 추기경에서 한자 ‘추’ 자도 경첩을 뜻합니다.
경첩은 문에 장착 돼서 문이 여닫히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말하자면 문의 안과 밖을 중개하는 기관을 말하는데요,
이 문의 안에 있는 존재가 바로 교황인 것입니다.

따라서 추기경은 교황과 일반 신도를 매개해주는 직책,
즉 교황의 집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추기경의 기원을 성서 중
사도행전에서 찾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의 열 두 제자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6장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이 말은 열 두 사도가 전도를 하는 과정에서
행정상의 잡무가 많아졌고, 이 때문에 성직자 본연의 일이
방해받게 되었으므로 그러한 행정 업무를 처리할 사람들을
뽑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추기경의 시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 교회 때부터
추기경이라는 직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교황권이 성립되는 서기 3세기에서 4세기 무렵에
로마 교황청 안에 공식적인 직책으로 성립합니다.
이때의 추기경은 사도행전의 뜻과 같이
교황이 위임한 행정잡무를 처리하는 직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추기경은 교황의 집사로서의 업무보다,
교황 궐위 시에 교황을 선출하는
교황 선거권자로서의 임무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추기경이 이러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 데는
가톨릭 교회의 기구한 역사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교황은 전체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지만,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유럽의 실질적인 통치권자로 군림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샤를마뉴 대제 때 프랑크 왕국이 성장하면서
점차 세속 권력이 교황권을 능가하게 됩니다.
10세기에 들어서면 세속권력자인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교황 임명을 좌지우지하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원래 교황은 로마 교구의 시민과 사제들이 모여서
선출했습니다.
그런데 세속 황제는
로마 귀족과 주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이 지목한 자를 교황으로 선출되도록
조종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교황청은 이에 대해 반발했고,
교황권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합니다.
그 정점에 있던 인물이
1058년에 즉위한 교황 니콜라오2세였습니다.
그는 즉위한 다음해인 1059년에 라테란 공의회를 열고,
이후 교황은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들에 의해서 선출하는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이후 세속 권력이 추기경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자
교황을 선출할 때는 추기경들이 교황청의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외부인의 접근을 금지한 가운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제도도 마련됐습니다.
이로서 추기경은 교황의 집사에서 교황 선출권을 갖는
교회의 중추기관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역사 토막상식, 아하 그렇구나!
염수정 추기경 탄생을 계기로
가톨릭 교회에서 추기경이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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