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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에서 고려와 독일에서 금속활자가 개발된 역사적 배경

2014-02-16

최근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을 토대로
금속활자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민족은 금속활자 기술 선진국으로서
이에 앞서 1234년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상정고금예문]이라는 책을 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인들은 고려의 금속활자보다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금속활자를
더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에는 고려시대인 1234년에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이 간행됐는데
이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금속활자로 인쇄된
<성서> 보다도 200년이나 앞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을 제대로
기술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상정고금예문]은 이전에는 나무에 글자를 판각하던 것을
금속을 주조해 활자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따라서 인쇄과정은 이전과 똑같이 금속활자판 위에
먹물을 바르고 그 위에 종이를 붙여
문지르는 방법을 사용했죠.
그러나 구텐베르크는 단지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 대량인쇄가
가능하도록 하는 활판인쇄기를 발명해냈습니다.
기술적으로 보면 이 인쇄기가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죠.
우리나라에는 19세기 말이 돼서야 이런 인쇄기를
외국에서 수입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금속활판인쇄가 지니는
역사적 의미입니다.
[상정고금예문]은 고려의 무신정권 담당자들이
몽고 침략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바로잡기 위해
옛 성현들의 말을 모아 펴낸 하나의 예절교범입니다.
금속활자라는 기술적 측면 이외에 주목할 만한
역사적 의미는 별로 크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반해 구텐베르크가 대량인쇄해 낸 [성서]는
유럽이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하게 하는 중요한 매개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성서] 한권이 어떻게 해서 그러한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요.
15세기 유럽은 르네상스 열풍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르네상스의 핵심은 이제까지의 기독교에 대한
절대복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죠.
그런 운동을 편 대표적인 인물로 네덜란드에
에라스무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에라스무스가 보기에 당시의 기독교는
너무 타락해 있었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교리 그 자체에 원인이 있기 보다는
성직자들의 부패가 주범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초기 기독교의 단순하고 소박한 신앙생활로
돌아가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초기 기독교시대의 상황을 담고 있는 [신약성서]를 연구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일반인들이 성서를 집어 드는 일은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법에 의해 성서는 성직자만이 보고
해석을 내릴 수 있게 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은 성서 기록에 사용된 라틴어를 해독할
능력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에라스무스의 주장대로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읽고
초기 교회의 모습을 확인하려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을 한 뒤 필사를 해서
널리 돌려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방대한 양의 성서를 일일이 필사해서 돌려보는 일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죠.
바로 이 순간에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기를 발명해서
학자들이 독일어로 번역한 성서를
대량 생산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성서는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그 덕분에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쳐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고려의 금속활자가 더 빨리 개발되었지만,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에 비해
낮게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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