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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국의 무덤양식

2014-03-08

최근 경주 황남동에 있는 고분 천마총에서 발굴된 말다래에서 녹을 제거한 결과 금동 천마 그림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이미 1973년 발굴 초기에 다른 말다래에서
천마도가 발견된 바가 있지만
이번에 또 다시 발굴됨으로서 신라에 천마 숭배사상이 널리 존재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사실 천마도는 신라의 유일한 그림 유물입니다.
신라 고분 유물에 그림이 희귀한 것은
신라의 독특한 무덤 양식 때문입니다.
오늘은 삼국의 각기 다른 무덤 양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각기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는데,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무덤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덤 양식만 보고서도 그것이 어느 나라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삼국은 모두 중국으로부터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고대국가로 성장해나갔습니다.
따라서 중국과 직접 맞닿아 있는 고구려가
가장 먼저 수준 높은 고대문명을 일구었습니다.
고구려 문명이 선택한 무덤 양식은 이른바 적석총입니다.
관을 안치한 뒤 그 위에 돌을 덮어 높이 쌓는 방식입니다.


나중에는 돌을 쌓는 방식이 세련되어서
사각형의 기반을 만들고 계단식으로 쌓아올려
마치 피라미드와 같은 형태를 만듭니다.
현재 중국 지안에 있는 장군총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고구려인들은 관을 모시는 공간도
세련되게 장식하기 시작합니다.
적석총 앞면에 입구를 만들고 돌로 천장과 벽을 조성하며
터널을 만듭니다. 이것을 현도라고 부릅니다.
현도의 끝에는 역시 돌로 된 천정과 벽체를 가진
방을 만듭니다.
이 석실 안에 관을 안치하고 관 주변에
고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각종 일상용품을
부장품으로 삼아 함께 묻었습니다.
이는 고인이 죽어서도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생활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죠.
이러한 염원에서 행한 또 하나의 엄청난 행위가 있었습니다. 바로 현도와 석실의 벽과 천정에 화려한 채색을 한
벽화를 그린 것입니다.
고인이 살아 있을 때와 아무 차이 없이 느끼도록
생생한 생활화를 남긴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용총이나 쌍용총 등에서
그 생생한 기록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유민들이 한반도를 남하해서 세운 국가가
백제입니다.
따라서 백제인들이 만든 고분은 기본적으로
고구려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남아 있는 적석총이
장군총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백제는 점차 고구려를 통하지 않고
직접 서해를 건너 중국과 교류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고분 양식도 고구려 것에서 벗어나
중국 것을 모방하게 됩니다.

그 결과 고분의 건축재로 돌이 아니라
진흙을 구워 만든 벽돌을 사용합니다.
백제의 대표적인 고분인 무녕왕릉이
바로 그런 벽돌식 석실고분입니다.
이에 반해 신라는 적석총의 단계에서는 고구려와 비슷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라 고유의 고분을 만듭니다.
무엇보다도 고구려 고분과 같은 석실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나무로 일정한 공간을 만든 뒤
그 안에 관과 부장품을 안치하고 뚜껑을 덮습니다.
그리고 돌을 쌓아 덮은 뒤 다시 흙으로 덮어
둥그런 봉분을 만듭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주에서 보는 마치 작은 동산만큼이나 되는 엄청난 크기의 고분들이 그런 무덤들입니다.
신라인들이 만든 무덤에는 현도나 석실이 없기 때문에
그림을 그려 넣을 공간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구려 고분에서와 같은 벽화를
신라 고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천마총의 말다래 장식에 그려진 천마도가 소중한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역사 토막상식, 아하 그렇구나!
천마총에서 새롭게 천마도가 발굴된 것을 계기로
삼국의 무덤 양식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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