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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러시아가 건국된 과정

2014-04-19

얼마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된 이후, 이번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서 러시아계 주민들의 봉기가 일어났는데요.
우크라이나 사태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소련이 붕괴한 뒤 25년 만에
러시아가 소련을 대신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국제사회에 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엔 러시아라는 나라가 언제 어떻게 건국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러시아와 인접한 스웨덴의 빌카와 고트랜드 섬에서
지난 20세기 초에 유적발굴이 있었는데
거기서 다량의 아라비아 은화가 출토돼
학자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습니다.
이슬람 세력이 최대로 팽창한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도
이슬람의 영향력이 북부유럽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당시 스웨덴 지역은 바이킹족의 활동무대였습니다.
따라서 이 은화들은 바이킹이 이슬람인들과
활발하게 교역을 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유럽 최북단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바이킹들은
중동의 이슬람 왕조와 교역을 하기 위해
어떤 경로를 사용했던 것일까요.

바이킹이 해양민족이기 때문에 대서양을 남하해서
이베리아 반도를 돌아 지중해로 들어가는 경로를
상정할 수 있지만
지도를 펴 놓고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엄청나게 돌아가는 길입니다.
바이킹의 근거지인 발트해에서 이들 지역까지의 최단거리는
육지를 가로질러 직접 흑해나 카스피해로 내려가는
경로입니다.
오늘날의 러시아 영토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것이죠.
실제로 바이킹들은 이 경로를 이용했습니다.
먼저 발트해에서 핀란드만으로 들어가 강을 거슬러
라도가 호수로 들어갑니다.
이 라도가 호수에서는 여러 강들이 발원하는데
곧바로 남쪽으로 수로를 따라가다 보면
드네프르강과 만나게 됩니다.
이 드네프르강은 흑해로 흘러들어갑니다.
흑해의 서쪽 출구가 바로 콘스탄티노플이나
비잔틴을 경유해 이슬람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한편 라도가 호수에서 더 동쪽으로 가면
볼가강과 만나게 되고
이 볼가강은 카스피해로 흘러들어갑니다.
카스피해의 남쪽 해안이 현재의 이란인데
당시에는 바로 이슬람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두 경로가 바이킹들이 주로 이용한 무역로였습니다.
바이킹들은 이 두 경로를 따라 왕래하다가
곳곳에 무역도시를 건설하게 되고
결국 그중 번화한 도시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정착한 바이킹을 “배를 젓는 사람”이란 뜻의
루스족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현대 러시아인의 기원입니다. 당시 가장 번성했던 도시는 노브고로드와 키예프였습니다. 키예프는 바로 오늘날 우크라이나공화국의 수도입니다.
키예프는 8세기 경부터 건설돼 번영하다가
9세기 말 경 키예프루시 공국으로 성장했고,
이것이 러시아에 세워진 최초의 왕국입니다.
10세기 말 무렵 키예프공국의 블리디미르1세는
이웃한 강대국 비잔틴제국 황제의 누이와 결혼하고
그와 동시에 비잔틴의 그리스정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오늘날까지 러시아에 정교 신도가 많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당시 키예프 지역에 대한 포교에 나선 비잔틴인으로
메토디오스와 키릴이라는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독교 포교를 위해 성서를 번역하려다 보니
러시아인들이 아직 제대로 된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문자를 약간 변형해서
그들에게 적합한 문자를 만들어주었는데
오늘날 러시아 문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문자를 키릴 문자라고 하는 것은
물론 만든 이의 이름을 본 따서 붙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러시아라는 나라는
우크라이나 지방을 거점으로 탄생해서
모스크바로 옮겨가 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지방을 탐내는 것은
그 나름의 배경이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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