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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삼바 카니발의 기원

2014-06-14

드디어 지구촌의 축구축제
피파 월드컵 대회가 시작됐습니다.
세계인의 눈이 지금 남미 브라질로 모아지고 있겠죠.
물론 우리나라도 지난 2002년의 영광을 되살리기를 바라는 온 국민의 열정이 뜨겁습니다.
브라질이야말로 열정이라는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입니다. 열정의 축제 삼바 카니발로도 유명한데요, 오늘은 삼바 카니발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삼바 카니발은 매년 2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 살바도르 등 대도시에서 열리는 축제입니다.
약 4일간 열리는 축제 기간 브라질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가 되는데요,
그래서 이축제가 그냥 먹고 마시고 노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역사를 되새겨보면
사뭇 다른 감회를 느끼게 됩니다.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대륙은 16세기 대항해시대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침략을 받아
그들의 식민지로 전락합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두고 서로 경쟁하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어 경도 서경 43도 37분을 경계로
그 동쪽은 포르투갈이, 서쪽은 스페인이 차지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포르투갈이 차지한 땅이 오늘날의 브라질입니다.
이후 브라질은 포르투갈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언어도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처음 이곳에 온 포르투갈인들이 찾은 것은
금과 향신료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금도 향신료도 없었습니다.
맨 처음 아메리카에 발을 디딘 콜럼부스가 파산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실망한 유럽인들은 향신료가 없다면 재배해서라도
얻어내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맨 처음엔 사탕수수가 그 다음엔 커피가,
이곳 기후와 토양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대규모 농장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거기에서 일할 노동력은 원주민들을 붙잡아다
노예처럼 부렸습니다.
그런데 가혹한 노동에 시달린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이 옮긴 전염병인 홍역과 천연두에 걸려
쓰러져 죽어갔습니다.
그러자 포르투갈인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아프리카에서 데려오기로 합니다.
이후 약 2세기에 걸친 노예무역으로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대거 이주해왔습니다.
오늘날 브라질 인구의 다수는 이렇게 이주해 온 흑인과
포르투갈인의 혼혈인 뮬라토들입니다.
사탕수수 농장의 흑인 노예들은 동물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그들 중에는 살기 위해 탈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농장주에게 다시 붙잡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무술을 훈련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브라질의 전통무예로 굳어진
카포에이라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보면 우리나라의 태권도와 아주 비슷합니다.
한편 농장주들은 노예들의 반항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1년 중 특별한 날을 정해 맘껏 놀게 해주었습니다.

흑인들은 포르투갈 노래에 고향 아프리카에서 추던 춤을
곁들여 놀며 고생을 달랬습니다.
이것이 삼바 춤의 기원입니다.
19세기에 들어 흑인들은 노예에서 해방됐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극빈층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1930년대에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에서
삼바 학교를 세우고 삼바 춤을 가르치며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하나 둘씩 늘어난 삼바 학교들은
단순히 노는 축제가 아니라
학교 별로 퍼레이드를 벌여 경연을 벌이기로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우 삼바 카니발의 기원입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리우의 삼바 카니발은
1부 리그 14개 학교가 삼바 드로모라는 경기장에서 벌이는
퍼레이드 경연이 본행사입니다.
각 학교는 1년 내내 이 퍼레이드를 위해 맹훈련을 하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장식을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유흥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고된 노예노동을 잊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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