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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낙선재에서 살다간 비운의 여인들

2014-06-21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반드시 들르는 명소는 궁궐입니다.
그런데 요즘엔 단순히 눈으로 둘러보는 궁궐이 아니라
귀로 우리의 전통음악까지 곁들여 듣는 관광코스가 인기입니다.
[고궁에서 우리 음악 듣기]라는 프로그램이 그것인데요,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종묘 등에서 고궁을 산책하며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가야금 등 우리 악기 연주와 춤 공연까지 감상합니다.
어제 6월 20일에는 창덕궁 낙선재에서
음악회가 열렸는데요, 오늘은 낙선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낙선재는 창덕궁 안에 있는 건물 중에서 정전인 인정전 못지않게 널리 알려진 장소입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건물이 위치한 장소가 고즈넉하고 건물 자체도 아담하기 때문인데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곳이 유독 비운의 여인들이 거주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 첫 주인공은 조선 24대 국왕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입니다.
헌종은 1834년부터 1849년까지 재위한 국왕인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국왕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그가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가
판을 치는 가운데 불과 스물 세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헌종은 순조가 죽은 뒤 그의 손자로서
여덟 살에 왕위를 이어받습니다.
조선 국왕 가운데 최연소 즉위였습니다.
따라서 할머니 순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여
국정을 이끌었고, 그녀의 뜻에 따라 이른 나이에 왕비를
맞아들입니다.
그 때 관례에 따라 마지막 왕비 후보로 마지막 세 명이
압축되었는데요, 순정왕후는 자신의 가문인
안동 김씨 가문 출신을 점지합니다.
하지만 어린 헌종의 눈길은 가문은 별로였지만
용모가 아리따운 다른 처녀에게 쏠렸습니다.
헌종은 혼인한 뒤에도 그녀를 잊지 못해
후궁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녀가 바로 경빈 김씨입니다.
헌종은 정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경빈 김씨만 찾았습니다.
결국 헌종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 외딴 곳에 그녀의 숙소를 마련해주고
그곳에 자신이 머물 사랑채로 낙선재를 지었습니다.
낙선재로 들어가는 대문에 걸린 현판에 쓰인 글자가
장락문입니다.
오래 즐긴다는 뜻이니 에로틱한 느낌마저 들게 하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낙선재에서 경빈 김씨와의 애틋한 사랑에 빠져 있던
헌종은 스물 세 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경빈 김씨는 꽃다운 나이 열 여덟 살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헌종과 지내던 낙선재를 떠나
궁궐 바깥으로 물어나야 했고,
법도에 따라 평생 재혼이 금지된 채 홀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녀는 오래 살아 일흔 여섯에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국왕 고종은 그녀를 위해 특별히 조문을 바칠 정도로
예를 다했습니다.
다음 주인공은 조선의 마지막 국왕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입니다.
그녀는 열 세 살의 나이에 황태자비에 책봉되어
창덕궁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순종은 아버지 고종이
일제에 쫓겨나는 것을 지켜만 보고,
나라를 일제에게 넘기는 합병조약에 별다른 저항도 못한 채
지내다 1926년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때 순종효황후의 나이가 서른 세 살이었습니다.
과부가 된 순정효황후는 낙선재로 거처를 옮깁니다.
낙선재에서 망국의 한을 달래다 광복을 맞이했지만
옛 왕조의 영광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이곳에서 6‧25전쟁을 겪어야 했습니다.
전쟁 당시, 그녀는 낙선재로 밀어닥친 인민군들에게
“이곳은 나라의 어머니가 사는 집”이라며 호통을 쳐서
내쫓았다고 합니다.
전쟁 뒤에는 일본에 머물고 있던 시동생 영친왕과
시누이 덕혜옹주를 낙선재로 불러들여 함께 지냈습니다.
마지막으로 낙선재를 지키던 비운의 여인은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혜옹주였습니다.
불운한 삶을 살아야 했던 두 여인은 1989년 4월
연달아 숨을 거두었고 이로서 낙선재를 지켜온 여인들의
이야기도 끝이 났습니다.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들도 귀국해 서울을 찾는다면,
꼭 낙선재를 찾아 가슴이 에이는 듯한 가야금 산조를 들으며
이곳에서 살다간 비운의 여인들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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