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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근대 유럽을 연 철학자 스피노자

2014-07-26

최근 한 종교계 재단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수가 종교가 평화에 기여하기보다는
갈등을 유발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종교가 오히려 사회악이라고 보는 충격적인 결과였는데요, 여기서 갈등을 유발하는 종교는
아무래도 유일신을 믿는 배타적인 종교 즉,
기독교와 이슬람교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기독교 국가인 유럽에서는 종교로 인한 사회갈등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그 중 중요한 하나로 철학자 스피노자가 닦아놓은 철학전통을 들고 싶습니다. 우리는 유럽의 근대를 연 철학자로
흔히 데카르트와 칸트를 꼽지만, 스피노자도 근대 유럽의 초석을 놓은 중요한 역할을 한 철학자입니다.
스피노자가 한 유명한 말은
“만약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문구입니다.
사실 이 문구에 그의 사상이 집약돼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163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유태인입니다.
데카르트와 동시대인이었고,
데카르트만큼 천재 기질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학문을 파고들수록
유대교의 유일신론에 회의를 품게 됩니다.
그는 성서에 기록된, 신이 일으킨 수많은 기적의 사례
자체가 신의 절대성을 부정한다고 보았습니다.
신이 정말로 절대적인 존재라면 기적이 필요할 현실을
만들지도 않았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오히려 신의 무능과 한계를 보여줄 따름이었죠.
결국 그는 성서란 것은 한낱 인간이 지어낸 문학작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그런 주장을 [신학 정치론]이라는 책으로 펴냅니다.
당연히 유대교에서는 그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그를 파문합니다.
단순한 파문이 아니라 그 누구도 그와 접촉할 것을 금지하는
저주의 파문이었고, 이로 인해 그는 죽을 때까지
고독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교의 박해 때문에 자신의 사상을
수정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사상을 더욱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성서에 표현된 신은 인간이 만든 신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신은 어떤 존재일까,
그는 이 세상을 조화롭게 구성하고 있는 자연 그 자체가
신이라고 보았습니다.
메마른 땅에 비가 내려 촉촉이 적실 때
비 자체가 신이라는 겁니다.
이를테면 범심론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사실상 유일신론에서
벗어난 것이 됩니다.
사실 인류 역사상 인간사회가 믿은 대부분의 종교는
다신교였습니다.
고전 그리스 문명이 수많은 신들의 아우성 속에서 꽃피었고, 힌두교의 경우 인간의 수만큼 신이 있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힌두교에서 파생된 불교도 부처를 유일신으로
상정하지 않습니다.
유독 한 뿌리를 가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만이
배타적인 유일신교였습니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유일신론이 비정상이고,
다신교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유일신론은 타인의 사상을 통제하려 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으로 비판합니다.
한 인간 즉 개인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그 자체로 신적인 존재이고 따라서
타인으로부터 생각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를 가집니다.
그런데 유일신교는 그런 개인에게 무조건 단 하나의 신에게
복종할 것을 강요하므로
이는 신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스피노자가 교단으로부터 파문당하고
암살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그는 외롭게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죽은 뒤 그의 사상은
후대 철학자들을 통해 유럽인의 정신세계에
뚜렷하게 각인됩니다.
그것이 오늘날 유럽에서 종교로 인한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토대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저는 유럽을 만든
세 개의 사과가 있다고 봅니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스피노자의 사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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