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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요일제가 도입된 과정

2014-09-06

고국은 오늘부터 추석 연휴에 들어갑니다.
국민 대다수가 고향 길에 올라 전국의 도로가 자동차로 메워지고 있습니다.
특히 올 추석 연휴는 일요일과 겹쳐서
끝 휴일 다음날 10일을 대체휴일로 사용하는 첫 사례여서 고향 길로 향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 보입니다. 대체휴일이라는 것은
특정 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쳐서 생긴 것인데요,
아마 일요일이란 것이 없었다면
이런 대체휴일이란 것도 없었겠지요.
우리가 이런 1주 7일 요일제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1주 7요일제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해서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우리 역사에 등장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정확하게는 1895년부터이니 이제 120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1895년 이전 즉, 요일제가 없던 시절에는
어떤 달력을 사용했을까요.
흔히 음력 달력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엄밀하게 보자면 음력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조선은 17세기 초에 청으로부터 시헌력을 받아들여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시헌력은 당시 청에 들어온 서양인 아담 샬이
중국 전래의 음력이 절기와 맞지 않는 것을
서양력으로 보완해서 수정한 달력입니다.
말하자면 음력과 양력을 절충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헌력에는 7요일제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시헌력에서 휴일은 어떻게 편성돼 있었을까요.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조선시대에 근대의 시간관념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업이 전무하다시피 하고
농업 위주의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오늘날과 같이 전국민이 한 날에 같이 쉰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쉬는 날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요,
관청마다 제각기 쉬는 날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시헌력에서는 한 달을 10일 단위로 끊어
초순, 중순, 하순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대체로 10일에 한번 꼴로 쉬는 날을 두었습니다.
그밖에 휴일로는 설날, 대보름, 5월 단오,
추석 등이 있었고요,
국왕과 청 황제의 탄신일도 휴일이었습니다.
고종 시대에는 7월25일이 국왕탄신일이었습니다.
이런 조선에 비로소 1주 7일제가 도입된 것은
1895년 5월입니다.
최초로 양력을 도입한 것이 그 해 11월이었으니
양력 도입보다 6개월 정도 앞서서
요일제를 도입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을 한 뒤
부산 등 개항장에는 일본을 비롯한 서양 각국의 영사관이
생기고 그들과의 교섭이 잦아집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간주기에
맞추어줄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부산 등 개항장에는 일찍이
1880년대부터 일요일에는 근무를 하지 않는 요일제가
관행으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한편 서울에서는 1886년에 미국인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스크랜턴이 이화학당을 세운 뒤로
서양 선교사들이 앞을 다퉈 신식학교를 설립합니다.
이들 학교의 설립자들은 자신들의 문화에 따라
시간표를 1주 7일제에 따라 작성합니다.
즉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수업이 있고,
일요일엔 쉬되 반드시 교회에 나가도록
교칙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또 학교 밖에서도 요일제가 시행된 곳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 자체가 일요일을 안식일로 삼아 예배를 드리는,
1주 7일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 것이었으니
두말 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죠.
이렇게 개항장, 학교, 교회를 거점으로
1주 7일제가 우리 생활 속에 점차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서양식 단발이나 양복과 같은 것은
우리 전통 문화와 맞지 않아서 처음엔 반발이 심했습니다. 하지만 요일제는 별다른 저항 없이 정착돼 나갔습니다.
열흘에 한번 쉬다가 7일에 한번 쉬는 제도였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양력이 공식적으로 시행되기 6개월 전에
서둘러 요일제를 도입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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