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역사

두 국가를 세운 여걸, 소서노

2013-01-03

두 국가를 세운 여걸, 소서노
두 개의 왕국을 세운 고대 한반도의 여전사

여성들의 활약으로 요즘은 '여풍(女風)'이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지만
수천년 간 한국의 중심은 남성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사에서 나라를 두 개나 만들었던 최고의 여걸이 있다.

주몽(朱蒙)이 고구려를 건립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자신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를 데리고 남하해
온조가 위례성(慰禮城)에 백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왔던 소서노(召西奴)로
여성이라는 사회적 한계를 극복하고 고구려와 백제 건국을 주도한
고대 한반도의 여전사, 소서노에 대해 알아보자.

고구려 건국의 협력자

언제 태어났는지 정확한 출생 시기는 전해지지 않지만
졸본부여의 5부족 가운데 하나인 계루부(桂婁部)의 공주로 태어난 소서노는
연타발(延陀勃)의 딸로서 북부여의 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인
우태(優台)와 결혼해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하지만 남편 우태가 일찍 세상을 뜨자 졸본에서 두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남편으로부터 지역적 기반과 넉넉한 유산을 상속받아
당당한 삶을 살고 있던 소서노에게 운명적인 사람이 나타났다.

훗날 고구려의 시조가 된 동명성왕(東明聖王), 즉 주몽으로
7살에 활과 살을 만들고 백발백중의 솜씨를 보이는 등
그의 뛰어난 재능을 시기한 동부여(東扶餘) 금와(金蛙)왕의 아들들에게 쫓겨
동부여에서 졸본부여로 남하한 주몽은
나이는 비록 8세 연상이요, 두 아들을 둔 과부였지만
소서노를 아내로 맞이해 졸본 땅에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실제로 졸본부여에서는 가장 강력한 토착 세력인 계루부의 부족장이며 대부호인
연타발(延陀勃)와 소서노의 도움으로
뛰어난 장수를 영입하고, 민심을 얻은 주몽은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세웠고 소서노는 고구려의 첫 번째 왕비가 되었다.

고구려 건국 후에도 소서노는 토착 세력의 분열을 잠재우는 등
주몽에게 힘을 집결되도록 많은 역할을 했고
그 덕에 주몽은 말갈(靺鞨)을 물리치는 등 고구려를 안정적으로 성장시켰다.

두 아들을 이끌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다

하지만 소서노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 했다.
주몽이 왕위에 오른 지 19년 되던 해,
주몽이 북부여에서 만난 예씨(禮氏) 부인과 낳은 아들 유류(孺留, 유리)가 나타나자
주몽은 유리를 태자로 책립하고 왕위를 잇게 했다.

또한 소서노를 소후(小后), 곧 제2부인으로 강등시켰으니
백제왕국의 건국사정을 전하는 삼국사기 권 제23, 백제본기 제1을 보면,
소서노의 두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의 좌절감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처음 대왕(주몽)이 부여에서의 난을 피해 이곳(졸본부여)으로 도망해 오자
우리 어머니(소서노)께서 재산을 기울여
나라를 세우는 일을 도와 애쓰고 노력함이 많았다.
이제 대왕이 세상을 떠나고 나라가 유류(孺留. 유리)에게 속하게 되었으니,
그저 티눈 같은 신세가 되느니,
차라리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땅을 골라 따로 나라를 세움만 못하다."

그렇게 쓰라린 가슴을 안고 고구려를 떠난 세 모자는 기원전 19년,
오간·마려·을음·해루·흘우 등 열 명의 심복과 그 일족,
자신의 부족인 계루부의 수많은 백성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가
패수와 대수를 건너 한산에 이르렀다.

그러나 비류는 바닷가에 살고 싶어 해...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홀(彌鄒忽)로 갔고,
온조는 기원전 18년, 신하들과 힘을 합해 하남 지역에 성을 쌓고 새 나라를 세우니
성 이름을 위례성, 나라 이름은 십제(十濟)라고 했다.

나라 이름을 ‘십제’로 정한 이유는 10명의 신하가 도와 국가를 세웠기 때문인데,
이 이름은 훗날 ‘백제’로 바뀐다.
비류가 선택한 미추홀은 땅에 습기가 많고 물이 짜서 백성이 편히 살 수 없었기에부끄러움을 느낀 비류가 죽자 그 백성이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고
이후 백성들이 많이 따르자 나라 이름을 고쳐서 백제(百濟),
즉 ‘백가가 바다를 건너(百家濟海)’ 세운 나라로 변경한 것이다.
그렇게 아들이 세운 국가가 점차 기틀을 잡아가는 것을 지켜보던 소서노는
기원전 6년, 소서노가 세상을 떠났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위대한 여성 영웅

그런데 이 놀라운 여성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삼국시대에 집필된 역사서들은 현재 전해지지 않기에
고대의 기록으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온조왕 편에,
근대의 기록으로는 신채호(申采浩)가 우리나라의 상고시대의 역사를 서술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인데
흔적은 미미하지만 한국이 자랑하는 역사가, 신채호가
“조선 역사상 유일한 창업 여대왕일 뿐더러,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세운 사람”이라고 극찬한 소서노.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여걸에 대한 보다 자세한 기록찾기를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 아닐까...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