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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김수로왕, 낙동강 유역에 가야국을 세우다.

2013-10-17

김수로왕, 낙동강 유역에 가야국을 세우다.
4백만 김해 김씨의 시조.


‘본관(本貫)’ 이라는 것이 있다.
조상들이 살 던 지방을 의미 하는 말로, ‘원적(原籍)’이라고도 하는데,
쉽게 말하면, ‘성의 고향’ 이다.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 가운데 하나가 ‘김씨’ 이고,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은 것이 ‘김해’를 고향으로 둔
바로, ‘김해에서 살았던 김씨’를 조상으로 둔, ‘김해 김씨’다.

김해 김씨의 시작은,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낙동강 유역에 가야국을 세웠던 <김수로 왕>이 바로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땅에 무려 4백만 명의 후손을 둔,
김해 김씨의 시조, 김수로 왕...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구지가’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다.

龜何龜何 (귀하귀하) /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수기현야) /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약불현야) / 내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번작이끽야) / 구워서 먹으리.

- 구지가(龜旨歌) -

고려 시대에 지어진 <삼국유사>에는
가락국의 역사에 대해 기술한 <가락국기>가 포함 돼 있다.
<가락국기>에 따르면, 김수로 왕은, 서기 44년 3월, 세상에 태어났는데,
탄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신화가 전해진다.

“하늘이 열린 다음 이 땅에는 아직 나라의 이름이 있지 않았고
임금과 신하의 호칭 또한 없었다.
다만 9간이 있었는데, 그들이 추장으로서 백성을 통솔했다.
그들이 사는 북쪽에 구지(龜旨)라는 봉우리가 있었는데,
그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2-3백 명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하늘이 나로 하여금 이곳에 새로 나라를 세워 다스리라 명하므로,
내가 거기로 내려가고자 한다
<구지가>를 부르면 곧 대왕을 맞아 기뻐 뛰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가락국기>는, 이 장면 이후에,
고대사회에서 왕을 맞이하는, 일종의 민간신앙적인 광경을 기록하고 있는데..

“얼마 뒤에 하늘을 보니, 붉은 줄이 땅에 내려와 있었고,
그 줄 끝에 붉은 보자기로 싼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여섯 개의 알에서 사내아이들이 태어났는데
그 가운데 가장 먼서 태어난 이가,
‘처음 나타났다’는 의미로 이름을 <수로(首露)>라 지었고,
그가 만든 나라를 가야국이라 불렀다.”

김수로왕의 탄생 설화가
얼핏 박혁거세나 주몽과 비슷하지만,
한꺼번에 여섯 개의 알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가야국이, 연합국가의 성격을 띤 나라였음을 의미한다.

어진 정치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다.

김수로왕이 가야국의 왕이 된지 4년이 지났을 때,
바다 서남쪽에서 붉은 돛을 단 배가 들어왔다.
배에서 여인이 내리자, 왕이 나와 맞았는데,
여인은, 자신이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 ‘허황옥’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부모가 꿈을 꾸었는데, 하늘이 김수로왕에게 가 왕비가 될 것을
명했다는 것이다. 아유타국은 인도의 한 지방에 있었던 나라로 전해진다.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와 결혼 한 김수로 왕은,
나라의 관제를 정비하고 다시 세웠는데
이전 보다 더 어진 정치를 펼쳐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

이런 모습을 <가락국기>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며 백성 사랑하기를 자식같이 해서,
그 교화가 엄하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위엄이 있고,
정치가 엄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지게 되었다.”

김수로왕의 왕비는,
서기 189년 3월, 1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구지가>를 불렀던 구지봉 언덕에서 왕비를 떠나보낸 김수로 왕은,
이후 10년 동안 탄식하다가 199년 3월,
1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김해 김씨 후손들은,
경남 김해시 서상동에 있는 김수로왕의 능에서,
제사를 지내며 자신들의 시조인 김수로 왕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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