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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의 민심을 훔친 대도, 임꺽정

2010-02-06

조선의 민심을 훔친 대도, 임꺽정
대도 임꺽정

임꺽정이 처음 역사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50여 년 전인 조선 명종 때로, '명종실록'에 따르면 1559년 임꺽정은 이미 황해도에서 막강한 세력의 도적떼를 이끌고 있던 인물이다. 임꺽정의 난은 조선 건국 이후 최초, 최대 규모로, 최장기간에 걸친 조직적인 농민 저항이다. 활동과정에서 소상인이나 수공업자 등 광범위한 호응 받아 난이 확대되어 나갔기 때문에 국가서는 굉장한 위기의식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긴급대책을 통해 황해도의 모든 관리를 무관으로 대체하는 등 대대적인 소탕 작전에 나섰다. '도적을 잡아오는 이에게는 파격적인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의 특별포고문이 내걸리고, 이어 중앙군과 지방군이 합동으로 ‘본격 토벌 작전’에도 나섰다. 하지만 임꺽정은 관군이 토벌에 나설 때마다 미리 압수한 정보로 자취를 감추고 오히려 관군에게 역습을 가해 관군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도적단은 황해도에서 평안도로, 또 강원도와 경기도를 거쳐 급기야 수도 한성에까지 출몰했다.


시대가 만든 도적

임꺽정은 도적이 되기 전까지 백정으로 황해도 봉산 일대에서 생활했다. 이 지역은 대부분 갯벌지대로 갈대만 무성하고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땅이었다. 임꺽정은 이곳에서 갈대를 이용해 삿갓이나 그릇을 만들어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형편이었다. 그런데 15세기에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농업 기술이 마침내 간척지 개발 붐으로 이어지며 백성들의 터전마저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6세기에 들어서 간척에 성공하면 그대로 토지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앞 다투어 간척지 개발에 나선 권문세가들의 횡포가 시작되었다. 특히 임꺽정이 머물던 황해도 일대는 당시 명종 임금의 외삼촌이었던 ‘윤원형’의 주도 아래 빠르게 간척지로 변해갔다. 이렇듯 권세가들은 물론 왕의 친인척까지 가세해 농민들의 땅을 수탈해 가는 상황에서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기 부지기수였다.

특히 권세가들은 생산과 유통을 통해서 황해도 지역의 모든 이권을 독점하게 되면서 그 지역에 생활하고 있던 소농민들이 생업지를 잃고 유랑하게 되었다. 또 그 이외의 소농민, 상인들, 백정 계층들도 마찬가지 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이들 하층민들이 결집해서 난을 일으킨 것이 바로 '임꺽정의 난'이다. 이 외에도 명종실록에 기록된 당시 대규모 도적 사건만 해도 모두 40여건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수의 백성들이 단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농기구 대신 칼을 잡고 일어섰다.


계속된 국민 수탈

임꺽정은 약탈한 물건을 처분하기 위해 조선 최대의 상업중심지였던 ‘장통방’을 애용했는데, 장통방은 당시 유통경제의 중심으로 ‘장시’는 권문세가와 지주들에게도 역시 중요한 공간이었다. 지주들은 간척지에서 생산된 곡식을 그냥 파는 것으로는 성이 안 차 매점매석에 폭리까지 일삼았는데 이 모든 일이 장시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 농촌 인구들이 점차적으로 서울에 유입되고 수공업자 상인층들이 늘어나면서 서울 인구가 급격히 증가됐다. 이에 따라서 서울의 미곡을 비롯한 생필품의 수요가 증가했고, 그에 따라 물가가 상승하고 미곡의 상품화가 본격적으로 진전이 됐다. 이에 15세기 말부터 권세가들이 서울과 가까운 황해도 지역에 주목해서 그 지역의 간척지를 적극 개발해서 그곳에서 생산된 미곡을 서울로 생산해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었다. 이처럼 장시가 성할수록 양반 권세가들의 부는 나날이 늘어가는 등 장시는 양극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불리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왕실의 실권을 쥐고 있던 문정왕후는 어린 명종을 대신해 20여 년 동안 척신정치를 주도했던 인물로 왕실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 왕실의 사유 재산을 관리하던 관청인 ‘내수사’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켜 나갔다. 내수사에 소속된 토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세금이 줄어들어 국가 재정은 감소되는 구조였다. 여기에 다시 권세가들의 힘을 뒤에 업고 일반 백성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는 상인들까지 등장하는 등 왕실과 지주들이 호화스런 생활을 일삼는 동안 내수사의 국민 수탈은 계속되었다.


대도 임꺽정! 의적으로 기억되다

명종실록에는 임꺽정을 ‘전형적인 도적’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1928년 발표된 벽초 홍명희의 역사소설에서는 의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임꺽정은 토벌군이 올 때마다 백성과 아전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뿐만 아니라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 전해 오는 전설은 그가 단순 도적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암시해 주고 있다. 고석정은 함경도 지방에서 조정의 공물을 바치기 위해서 지나가는 길목으로 임꺽정은 이곳에 은신하면서 공물을 약탈해 서민에게 분배해줬다고 한다. 임꺽정은 1562년, 토포사 남치근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체포 돼 처형을 당하고 말았지만 백성들의 마음속에서는 단 한 번도 사라진 적 없는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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