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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사랑,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

2016-03-04

사랑,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
요즘 언론에 유난히 힘없고 여린 아이들을 학대하는 잔인한 어른들의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라면, 그 기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고문처럼 느껴지실 겁니다. 오늘은 그래서 이와 연관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수한 환경 VS 엄마 사랑

이에 대한 실마리가 밝혀진 것은 미국의 생물학자 해리 할로 박사의 연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할로 박사는 원래 붉은털 원숭이를 이용해 실험을 하던 보통의 생물학자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험에 이용하는 원숭이들의 건강과 안전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할로 박사 연구팀들은 어린이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서 떼어내어, 완전히 살균 소독된 우리 안에서 따로 키웠습니다. 다른 원숭이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전염병이 옮거나 싸움으로 인해 상처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요. 원숭이들은 완벽하게 보호된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완벽하게 보호를 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원숭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죽어갔고, 살아서 어른으로 자란 원숭이들은 다른 원숭이들과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폭력적이거나 무관심한 모습만을 나타내었고, 짝짓기 계절에 돌아와도 이성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다가 결국은 평생 외톨이로 지내는 경우가 많이 관찰되었습니다. 할로 박사는 이제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혹시 잘 먹고 보호해주는 것 말고도 어린 원숭이가 자라나는데 필요한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 말이죠.

대리모 인형 실험
할로 박사는 자신의 궁금증을 실험하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고안해냈습니다. 바로 ‘대리모 인형’을 통한 어린 원숭이의 반응 정도를 보는 실험이었지요. 그는 갓 태어난 붉은털 원숭이 아기를 어미에게서 떼어내어 우리에 넣고, 두 개의 대리모 인형을 넣어주었습니다. 하나는 우유가 가득 든 젖병이 매달려 있어 배고픔을 달래줄 수 있지만 철사로 만들어져 딱딱하고 차가운 인형이었고, 두 번째는 헝겊과 솜으로 만들어져 푹신했지만 젖도 나오지 않고 모양도 진짜 엄마랑은 별로 닮지 않은 인형이었습니다. 어린 원숭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배고픔을 달래는 일이기 때문에, 어린 원숭이는 우유를 주는 철사 인형을 더 좋아할 테지요. 하지만 두 개의 인형을 만난 아기 원숭이들의 반응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똑같았습니다. 이들은 배가 고플 때만 잠깐 철사 인형에게 다가가 우유를 빨아 마시고는 나머지 시간 모두를 헝겊 인형의 품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기 원숭이는 배부름보다는 안락하고 따뜻한 느낌을 좋아했고, 심지어는 입으로는 젖꼭지를 빨면서도 몸은 헝겊 인형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었지요. 어린 원숭이에게 먹을 것만 제공하는 경우에는 원숭이는 항상 불안해하고 외로워하다가 결국 심리적 장애가 생기거나 때로는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헝겊 인형이 보조적으로 주어진 경우에는 그런 일이 적게 일어났지요. 아기 원숭이들이 보드라운 헝겊을 껴안는 것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관찰한 할로 박사는 헝겊인형이 부분적으로나마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엄마의 어떤 부분이 아기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일까요?

모성의 신비로움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본질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할로 박사는 이 본질을 찾아낸다면 이를 응용해 아기를 정상으로 키울 수 있는 ‘생명이 없는’ 엄마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모성’이라는 신비로움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찾아낸 것이죠. 할로 박사는 과학자답게 엄마가 아닌 존재가 엄마가 될 수 있는 최소의 요건들 중 두 가지 물질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 것은 바로 보드라운 감촉과 움직임이었습니다. 어린 원숭이들은 보드라운 인형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알았으니 이번엔 어린 원숭이에게 고정된 헝겊인형과 그네처럼 흔들리는 헝겊인형을 주었습니다. 어린 원숭이는 마치 흔들림 속에서 안정감을 찾듯 움직이는 인형에게 꼭 달라붙어 있기를 좋아했고, 이렇게 흔들리는 인형에게 매달려 자라난 어린 원숭이들은 거의 정상적인 행동 패턴을 보여주었습니다. 단지 흔들리는 인형일 뿐이었는데도,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확실했지요. 이로 인해 알게 된 사실은 부모가 아기를 안고 부드럽게 얼러주는 것이 뇌의 정상적인 발달을 유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움직임은 아기의 신경계를 자극하는 작용을 합니다. 부모에게 안겨 돌아다니고 움직여질 때마다 아기의 미숙하지만 민감한 신경계는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를 배우고, 떨어질 것 같으면 엄마에게 매달리거나 두 팔을 휘둘러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 하나하나가 자극이 되어 신경세포의 연결과 발달을 가속화시키게 되는 것이죠. 또한 엄마에게 안겨진 아기는 다음 순간 엄마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예측’을 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일을 하루종일 되풀이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와 자극, 예측과 적응의 줄다리기는 아기의 뇌를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 시기 아기의 뇌는 신경계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꼭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극없이 홀로 남겨진 아기들은 자기 몸에서라도 자극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할로 박사는 격리되어 자라난 원숭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의미없는 동작의 반복이나 자해 현상은 주변에서 자신을 자극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몸을 가지고 자극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처절한 자구책이었음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답니다.

아기를 안아준다는 것
이 모든 것을 종합한 결과, 할로 박사팀은 드디어 하나의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아기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얼러서 달래주는 존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의도치 않은 실험을 통해 이것이 증명됩니다. 1945년, 오스트리아 의사 레네 스피츠(Rene Spitz)는 기아보호소와 감옥내 탁아소를 관찰하다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일단 객관적인 조건은 기아보호소 쪽이 월등히 좋았습니다. 새로 지은 기아보호소는 매우 위생적이고 깨끗했으며, 먹을 것도 충분히 공급되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아보호소에 입소하는 아이들 중 20~30%는 입소 첫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기아보호소에 비한다면 감옥 내 탁아소 시설은 형편없을 지경이었다고 해요. 많은 아이들이 한데 모여 엉켜 뒹굴었고, 더러웠거든요. 하지만 이 곳의 아이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스피츠가 관찰한 넉 달 동안에만 기아보호소의 아이들은 88명 중 23명이 사망했지만, 감옥 내 탁아소의 아이들 중에 죽은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차이는 따스하게 안아주는 손길이었습니다. 기아보호소에는 보모가 부족해 아기들은 거의 안겨있지 못했지만, 감옥내 탁아소에서는 엄마들이 아기를 안아주고 얼러주는 것이 허용되었거든요. 결국 스피츠는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이고 깨끗한 환경을 제공하더라도, 따스한 손길을 받지 못한 아기들, 즉 사랑스러운 쓰다듬을 받지 못한 아기들은 점점 생기를 잃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특히나 생후 1년 미만의 어린아기의 경우에는 꼭 끌어안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경우, 아무리 잘 먹이고 입혀도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사망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기들은 작은 일에도 어이없이 죽어갔고, 죽지 않고 살아남았더라도 모든 면에 있어서 무기력하고 타인과는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무심한 사람으로 자라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 아이들은 감정적인 면에서 서툴 뿐 아니라, 지능 지수 역시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보다 뒤떨어지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났습니다. 사랑이란 아이를 생존케하는 힘인 동시에, 아이를 훌륭한 어른으로 키우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지요.

사랑은 사람을 사랍답게 만든다
해리 할로의 연구는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라고 평가됩니다. 우리는 이제 부모가 아기를 안아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인간관계는 시간을 충분히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서로를 돌보는 것이 좋은 인생을 만들어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모두 그가 처음 물꼬를 터 준 덕분이지요. 인간을 파헤쳐 보니 그 밑바탕에는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왜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 사랑이 부족할 때 왜 우리가 제대로 살아가기 힘든지를 설명해줍니다. 일상적인 애착 관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지만, 이 작지만 지속적인 반응이야말로 우리가 하루하루를 견뎌내게 하고 우리를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근본이 되는 것이었죠. 사랑을 배우는 것은 바로 삶을 배우는 것이고, 처음부터 사랑을 배우지 못하는 경우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학대하는 것이 단순히 가정 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며 우리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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