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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살균제, 살충제의 역사

2016-05-20

살균제, 살충제의 역사
혹시 가습기 쓰시나요? 저는 천식 증상을 앓고 있어서 가습기를 자주 사용했는데요, 요즘에는 정말 가슴 철렁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즉,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인데요, 오늘은 이를 소재로 화학적 살충제와 살균제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가습기 도입과 가습기의 종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보가 난무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은 2014년 12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원회가 발간한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 사건 백서]입니다. 이 백서에서는 이번 사건이 전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biocide 사건이라 규정한 바 있습니다.
가습기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건 1990년대부터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날씨는 여름에는 고온다습하지만, 겨울과 봄은 건조해서 호흡기 질환 발생 비율이 높아서, 건조한 계절에 쓰는 계절가전으로 도입된 것이죠. 가습기는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가열식과 초음파식입니다. 가열식 가습기는 말 그대로 물을 끓여서 수증기를 만들어내 가습하는 방법으로 난로를 피우던 시절, 그 위에 주전자를 얹어서 물을 끓이던 것과 비슷한 방법입니다. 가열식 가습기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고, 물을 끓이기 때문에 따로 살균할 필요가 없지만 화상의 위험과 전열 기구의 특성상 전력소비가 많다는 것이 단점이었지요. 그래서 도입된 것이 초음파식 가습기입니다. 이는 물 분자에 초음파를 가해주면, 초당 20만 헤르츠 이상으로 진동하는 초음파의 강력한 진동 에너지로 인해 물 문자가 미세하게 쪼개지고 이 것이 내부에 들어 있는 선풍기 팬의 바람에 의해 기기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초음파 가습기는 가습기를 켜는 순간부터 차가운 물 미스트를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고, 팬의 위치를 조정하면 특정한 장소만 집중적으로 가습이 가능해 방 안의 온도를 높이지 않고, 순간적으로 집중 가습이 가능합니다. 물론 화상의 위험도 없고, 전력 소비도 적어서 더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지요. 하지만, 초음파 가습기는 밀폐된 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이 물을 기화시켜 분무하기 때문에, 가습기 물통에 세균이 서식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가습기를 사용하는 것은 이 세균들을 공기 중으로 분사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등장
실제로 가습기를 써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하루이틀만 청소를 하지 않아도 물통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서 꺼림칙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습기는 매일 물을 갈아주고 물탱크를 청소할 것을 권하곤 했지만, 사실 가습기를 쓸 때마다 통을 청소하고 말리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1994년, 처음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등장합니다. 곧 비슷한 종류의 제품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고, 가습기 물통 속에서 번식할 수 있는 세균들을 억제하여 물통 청소를 조금 소홀히 해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부터 국내 대학 병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전말
실제 환자는 더 이전부터 발생했다고 하지만, 이게 사람들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온 건 2006년부터입니다. 2006년 봄에 들어서면서 서울아산병원소아중환자실에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동일한 양상을 띠며 급속히 진행하는 호흡부전증 환자 3~4명이 거의 동시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들 환자들은 입원 시 영상소견이 간질성 폐렴과 유사하였으나 기존의 호흡부전증 환자들과는 달리 어떠한 치료에도 반응이 없이 계속 악화되며 폐기흉이 발생하는 것이 문제죠. 그래서 이 병원 의료진들은 다른 병원에서도 동일한 환자들이 보고되었는지 알아보았고,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중환자실에서도 동일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을 확인하게 됩니다. 당시 이들 환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늦겨울(2월)부터 초여름(6월)까지 주로 발생하며, 또 일반적인 폐렴환자처럼 열이나 콧물 등 감기 전구증상이 뚜렷하지 않았다가 증상 시작 후 2~3주경에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는 등 호흡곤란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약 50% 이상에서 기흉이 발생하면서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는 특징을 보였다고 합니다. 2008년에는 이 질환이 겨울~봄철에 다시 발생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원인을 찾기 위해 서울지역 4개 대학병원(서울아산병원, 서울대학병원, 삼성서울병원, 연세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이 미리 모임을 갖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이러한 환자가 입원하면 적극적인 정밀검사를 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이 환자들의 폐에서 어떤 바이러스나 세균을 찾지 못했고, 독특한 염증 반응의 소견으로 인해 화학물질에 의한 손상의 가능성이 제시됩니다. 여러 논박이 오간 끝에 그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가습기 살균제였습니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으로 쓰인 PHMG/PGH 혹은 CMIT/MIT 성분이 의심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실시된 동물 실험 결과, 이 물질들은 이들을 생쥐, 기니피그, 토끼 등의 실험동물에게서 자극성, 부식성, 세포독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그래서 2011년 8월에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 원인 미상 페손상 위험 요인’이라고 발표했고, 이후 이 물질의 사용 자제를 권고한 이후 원인 불명의 폐손상 환자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세균을 죽이려 사용했던 가습기 살균제가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죠.
이 백서에 따르면 2013년까지의 조사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가습기 살균제가 직접적 원인이 되어 질병이 발생한 것이 확증된 환자가 127명(사망 57명), 가능성 높음 판정자 41명(사망 18명) 등으로 최소한 168명의 환자들이 심각한 폐질환을 앓았으며, 이중에서 75명은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제시되는 자료들을 보면 2006년 이전에 발생한 폐질환 환자와 사망자는 통계에서 빠져 있으며, 다른 폐질환으로 진단받고 치료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상당수 이와 연관 있을 가능성도 높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아직도 현재진행중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수는 사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살충제의 위험성
사실 이 사건에서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이미 비슷한 사례를 오래전부터 겪어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역사상에서 이런 사례는 또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살충제 DDT죠. 1962년, 미국의 과학작가였던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을 통해 살충제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당시 매우 인기를 끌고 있던 살충제 DDT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하며, 인류가 지금처럼 DDT를 계속 남용한다면 결국 곤충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사라져 봄이 와도 더 이상 개구리가 울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지 않는 침묵의 봄이 될 것이라 경고한 바 있거든요.
DDT란 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의 약자로, 그림처럼 6각형의 벤젠 고리 2개와 염소가 결합한 유기염소 화합물입니다. 이 물질을 처음으로 합성한 것은 1874년 자이들러(O. Zeidler)였으나, 그는 이 물질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지요. 이 물질의 용도는 65년이나 지난 1939년, 스위스의 과학자 뮐러(P. Muller)에 의해 알려집니다. 당시 한 화학회사에서 살충제를 연구하던 뮐러는 잊혀진 화학물질이 뛰어난 살충제임을 알아냅니다. DDT는 농사를 망치는 메뚜기나 벼멸구같은 작물 해충 뿐 아니라, 사람에게 질병을 옮기는 모기, 파리, 빈대, 이 등 거의 모든 종류의 곤충를 뿌린 즉시 죽이는 뛰어난 살충효과를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은 DDT 가루를 뒤집어 써도 당장은 죽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안전한 살충제로 각광받게 됩니다. 또한 DDT는 합성 공정도 그다지 까다롭지 않아 가격도 쌌기 때문에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갑니다. 처음에 DDT를 접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감탄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DDT는 농작물의 수확을 거의 완벽하게 보장해 줄 뿐만 아니라, 발진티푸스와 말라리아 등의 질병 발생율도 수직으로 낙하시켰다습니다. 스리랑카 지역에서는 DDT가 보급되지 않았던 1948년까지만 하더라도 해마다 말라리아 환자가 280만명이나 발생했지만, DDT가 널리 보급된 1963년에는 겨우 17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보고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이 기적같은 효과를 접한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DDT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다른 화학회사들도 앞다투어 살충제 연구에 뛰어들어 DDT와 비슷한 효능을 보이는 클로르데인, 톡사펜, 알드린, 디엘드린을 비롯해 파라티온과 말라티온 같은 유기염소계 살충제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940~1950년대는 살충제 전성시대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살충제 생산량과 판매량, 종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와 함께 식량 생산량의 증가와 질병 발생 감소가 뒤따랐습니다.
DDT는 곤충의 신경세포에 존재하는 나트륨 이온의 흐름을 방해하여 곤충의 신경을 마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문제는 곤충 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 인간 역시 신경세포에 있어서 나트륨 이온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DDT에 노출되면 곤충은 바로 죽지만 인간은 해가 없어보이는 이유는, 단지 DDT가 인간에게 무해한 것이 아니라 곤충에 비해 인간이 매우 크며, 또한 가루 상태의 DDT는 인간의 피부를 통해 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해로움이 바로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용성인 DDT는 시간이 지나면서 생물의 지방 성분에 서서히 녹아들어가기 시작했고, 이 것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생태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환경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초식동물로, 초식동물에서 육식동물로 이어지는 먹이 사슬을 따라 DDT는 생태계 전반으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양서류와 파충류, 조류를 DDT 중독으로 인해 멸종 위기로 몰아넣고 생태계를 교란시키게 됩니다.

양날의 칼이 되다
이번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여러모로 DDT 사건과 닮아 있습니다.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작은 생물, 즉 병원서 세균과 해충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화학적 무기를 만들어냈으나, 그 것이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되어 다시 인류를 공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이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사건의 가닥이 어떻게 결론이 날 지는 아직까지는 알 수 없지만, 부디 피해를 최소화하고, 충분한 합의를 이루는 쪽으로 나아가야 할 듯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기억해 두어야 하는 건 어떤 것이든 생명체를 죽이기 위해 개발된 살생제가 다른 생명체인 인간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너무 순진하고 오만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인류의 자성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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