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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천연 제품의 함정

2016-05-27

천연 제품의 함정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인공적으로 합성된 것’은 몸에 나쁘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천연재료’는 몸에 좋고 안전하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합니다. 평소에는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즐기던 젊은 여성이라도 임신을 하게 되면 이를 멀리하려고 애쓰고, 병원약은 ‘독해서’ 먹기 싫다는 어르신들 중에도 민간요법에서 쓰이는 약재들이나 ‘자연산’ 건강보조제라면 비싼 가격이나 그닥 좋지 않은 식감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찾아다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자연산 제품은 모두 ‘좋은’ 것일까요?

화학물질의 정의
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경원시하는 ‘화학물질’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과학의 한 영역으로써 화학(化學)이란 말 그대로 물질의 변화(化)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화학에서 다루는 물질은 기본적으로 원소이므로, 화학이란 이 원소들의 변화를 다루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구상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종류만 다를 뿐 모두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지구상에 화학물질이 아닌 것은 단 한가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화학물질’하면 떠올리는 대상은 사실 화학물질 전체가 아니라, 자연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인간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의미하는 말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결 구도는 ‘만들어진 것’ vs '존재하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죠.

MSG의 발견
그러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지구상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래 자연에서 존재하던 것을 추출하는 등의 ‘인위적’ 과정을 거쳐 순수하게 특정 물질만 정제한 것에 가깝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화학조미료의 대표격인 MSG입니다.
MSG의 발견은 1907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사람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의 4가지 맛만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밖의 다른 맛들은 통각(매운맛)이거나 촉각(떫은맛) 혹은 냄새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일본 도쿄대의 화학자 이케다 박사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국물용 재료로 많이 쓰이는 다시마의 성분을 연구했는데, 다시마에는 분명 이 4가지 맛과는 다른 독특한 맛을 내는 성분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마 추출물을 산을 이용해 분해해서 구성 성분들을 분리해냈고, 그중에서 글루탐산이라는 아미노산이 다시마의 독특한 맛을 나타내는 성분임을 알아냅니다. 그는 글루탐산이 내는 독특한 맛에 ‘우마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우리말로 바꾸면 ‘감칠맛’이 됩니다. 그는 글루탐산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구한 끝에 글루탐산에 나트륨 분자를 하나 붙여주면, 물에 아주 잘 녹을 뿐 아니라 다시마 고유의 맛이 더욱 배가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냅니다. 이렇게 글루탐산에 나트륨을 붙인 것이 바로 모노글루타믹나트륨, 즉 MSG입니다.
MSG의 감칠맛 효과에 감명받은 이케다 박사는 다음해 이를 아지노모토라는 상품명으로 개발해 팔기시작하는데, 이 것이 우리나라의 미원의 전신입니다. 지금과는 달리 아지노모토는 초기에는 매우 비쌌기 때문에 아무나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최초의 생산법은 그야말로 다시마를 산분해하여 추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천연재료에서 얻어진 것이었죠. 이후 밀가루나 콩의 글루텐, 사탕수수 당액이나 폐당밀을 세균이나 효모로 발효시켜 미생물의 대사생산물로부터 추출해내는 생합성법을 개발해 가격을 낮춘 뒤에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MSG는 화학조미료이지만, 화학조미료 항목에서 같이 설명하는 사카린, 아스파탐 등과 달리 MSG 분자는 화학적으로 합성, 변형하지 않으며 단지 미생물, 동식물 등에서 추출, 정제, 농축할 뿐이었죠. 공장에서 정제, 농축 생산한다는 점에서는 사실 정제 소금과 다를 바도 없습니다. 화학적으로 합성해서 화학조미료가 아니라 화학이란 학문으로 연구해서 나온 조미료라 화학조미료인 것이죠.

천연물질과 합성물질
이처럼 과연 무엇이 '천연물질'이고, 무엇이 '합성물질'일지 구별하는 건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코넬 대학교의 로알드 호프만 교수에 따르면, 그 구분은 의외로 간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식과 전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나일론과 레이온은 무조건 합성물질이라고 여기고, 면(綿)은 우리에게 좋은 천연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면은 지극히 인공적인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서 유전자를 변형시킨 종자와 역시 인공적으로 합성한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재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천연물질처럼 보이는 면도 사실 오늘날의 농업 관행을 고려해보면 지극히 인공적인 제품인 셈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레이온(rayon)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만든 비단'라는 뜻에서 '인견'(人絹) 또는 '목견'(木絹)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재생셀룰로스'라고 부르기도 하는 레이온은 부드러운 목재에서 얻은 셀룰로스를 섬유 형태로 뽑아낸 것입니다. 그야말로 '천연' 셀룰로스를 매우 간단한 화학 공정으로 가공한 것이죠. 이런 모든 과정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레이온이 가장 천연물질에 가까운 것이고, 면은 가장 인공적인 제품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 호프만 교수의 주장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연물질과 합성물질의 경계는 분명하지도 않고, 쉽게 정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연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자연이 제공해주는 것만을 이용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고, 그것만이 안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에서 생산되는 물질은 무엇이거나 그 생산량이 극도로 적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천연 의약품을 사용하는 한방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 사실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야생 곰의 쓸개를 말린 웅담이나 인적이 드문 산 속에서 자란 산삼이 귀하게 여겨지는 가장 큰 이유는 '희귀성' 때문입니다. 지금도 진짜 '자연산' 한약재는 인공적으로 재배한 것보다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자연산의 효과가 더 좋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요.

완전한 합성물질도 완전한 천연제품도 없다.
1960년대 레이첼 카슨이 DDT의 남용으로 인해 ‘침묵의 봄’이 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한 이래, 다이옥신이나 기타 환경호르몬의 누출로 인한 피해가 알려지면서 합성물질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공포 수준으로까지 발전했고, 그와 반대로 천연제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합성물질에 대한 공포나 천연제품에 대한 맹신은 양쪽 다 극단으로 치우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합성물질이라고 해서 모두 해로운 것은 아니며, 천연제품이라고 해도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심지어 『내추럴리 데인저러스』를 쓴 미국 스탠포드대의 화학자 제임스 콜만 박사는 자신의 책에 붙인 제목 그대로 세상 모든 물질들은 ‘본질적으로 위험한’ 존재로, 합성과 천연이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물질의 독성을 구분하기는 힘들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가공식품에 든 잔류농약, MSG, 방부제만큼이나 단백질의 부패, 기생충과 미생물의 오염, 알칼로이드 같은 천연 독성물질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독성을 지닌 물질이라고 해도 그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을 상쇄할 수도 있고, 안전하다고 알려진 것들 속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육가공식품인 햄의 경우, 훈제 처리 과정에서 발암물질의 일종인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가는 것으로 인해 비난을 받고 있지만, 아질산나트륨으로 인해 때로는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식중독균인 보툴리누스균을 없앨 수 있고, 지방의 산화를 막아 햄을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아질산나트륨과 같은 질산염 계통의 물질들은 손발이 파래지고 숨이 가빠지는 청색증을 일으킬 수 있는데, 질산염류는 보통의 농법으로 재배된 채소-그래서 잔류농약 검출이 의심되는 채소들-에 비해, 농약 잔류를 막는 유기농법에 의해 재배된 채소에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알려진 바 있습니다.
때로 하나의 조건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다보면 다른 것들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유기농이냐 아니냐는 물건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일 수 있지만, 그 것에 더해 다른 조건들도 고려해보는 것도 현명한 선택을 위한 지름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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