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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냉장고 속 음식의 안전성

2016-06-24

냉장고 속 음식의 안전성
옛말에 ‘여름 돼지고기는 잘 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저온 보관이 일상화되지 않았던 시절, 여름은 돼지를 잡기에 적합한 시절이 아니었지요. 덥고 습한 우리나라 특유의 기온 탓에 여름에는 도살 직후부터 고기는 부패가 시작되었기에, 모처럼 돼지고기를 먹었다가 식중독에 걸려 오히려 몸이 축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 시절, 아낙네들은 여름이면 3일에 한 번 김치를 담그어야 했습니다. 더운 날씨는 김치 속 유산균 뿐 아니라 다른 세균들의 번식도 부추겼기에, 김치는 3일이면 물러 버렸고 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우리네 입맛 탓에 여름철에는 번거롭더라도 김치를 조금씩 자주 담가 먹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먼 조선 시대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산 냉장고가 처음 선을 보인 것은 1965년-금성사(현 LG)에서 만든 ‘눈꽃냉장고’-이었지만, 냉장고 한 대의 가격이 대졸 초임자의 여덟달치 월급과 맞먹을 정도로 비싸서 이를 갖춘 집은 극히 드물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네 어머니들이 3일에 한 번씩 김치를 담그어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난 건 냉장고가 대중적으로 보급된 1980년대부터였지요.

냉장고 보급에 따른 생활의 변화
냉장고의 보급은 식품 보관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매일 조금씩 귀찮게 장을 보지 않아도, 한꺼번에 식재료를 사다가 보관하거나 음식을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두는 것이 가능해졌지요. 저온 보관은 식품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시켜주니까요 식품을 차게 보존하면 일반적으로 보존기간이 늘어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식재료가 가진 효소의 활성을 억제해 변성을 막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껍질을 벗긴 사과가 갈색으로 변하는 갈변 현상은 사과 속에 포함된 페놀 성분이 폴리페놀옥시다아제라는 효소에 의해 산소와 반응해 갈색을 지닌 퀴논류로 변화하여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껍질벗긴 사과라도 즉시 냉장고에 넣으면 갈변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폴리페놀옥시다아제라는 효소는 차가운 온도에서는 거의 기능하지 못하거든요. 이것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효소에 의해 매개되는 반응은 효소의 활성이 저하되면 반응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효소들이 단백질로 이루어져 온도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차가운 온도에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합니다. 과일들을 수확한 뒤에도 놓아두면 저절로 익는데요, 그것은 과일에서 성숙호르몬인 에틸렌이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에틸렌도 차가운 온도에서는 잘 분비되지 않아서 과일을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너무 익어 물러버리는 것을 상당기간 지연시킬 수 있지요.
둘째, 식품을 차게 보존하면 식품을 썩게 만드는 미생물의 증식도 억제됩니다. 앞서 말했듯이 단백질은 온도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데, 미생물 역시 단백질로 이루어진 생명체이므로 온도 변화에 따라 활성도가 달라지거든요. 그리고 대부분의 미생물들은 인간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에서 가장 활성을 나타내며 온도가 떨어지면 생존력이 떨어집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냉장고 속에 넣어둔 음식은 오랫동안 썩지 않는 것이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극한생물(extrempphiles)이라 하여 도저히 생물이 살아갈 것 같지 않는 고온이나 저온, 고압, 고염분, 낮거나 높은 pH를 지닌 곳에서도 거뜬히 살아가는 미생물들이 존재합니다. 미생물은 선호하는 생장 온도에 따라 15℃에서 생존하는 저온균(psychrophile, 15~20℃ 이하), 체온 근처에서 가장 활발한 중온균(mesophile, 20~45℃), 펄펄 끓는 온천수 속에서도 살 수 있는 고온균(thermophile, 45℃ 이상)으로 분류되는데, 시원한 것을 좋아하는 저온균들은 빙점에 가까운 냉장실 속에서도 충분히 생존 가능하며 그 중 일부는 오히려 냉장실 속에서 활발하게 증식하여 뒷통수를 치기도 합니다.

냉장고 속 저온균
예를 들어 식중독을 일으키는 장염 비브리오균은 냉장실 속에서는 번식하지 못하더라도 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장염 비브리오균은 실온에서는 10분에 1번씩 분열할 정도로 번식력이 왕성해서 상온에 방치한 음식물 중에 장염 비브리오 균이 단 1마리라도 있을 경우, 겨우 4시간 뒷면 이들은 100만 마리 이상으로 불어납니다. 따라서 상온에 몇시간 동안 방치했던 음식물-특히 수산물-이라면 이미 장염 비브리오균은 식중독을 일으키기 충분한 수로 번식한 뒤라 아무리 냉장고 속에 넣어도 식중독을 예방할 수 없습니다. 역시 식중독을 일으키는 리스테리아균 역시 추위에 강해 냉장고는 무용지물입니다. 따라서 이들로 인한 식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더운 여름철에는 한두시간이라도 냉장상태가 유지되지 않았던 우유나 유제품, 육류나 생선류는 가급적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심지어 여름철에는 고기의 핏물을 빼기 위해 찬물에 담가 놓는 경우라도 때로는 위험할 수 있으므로, 이 경우에라도 고기를 담근 즉시 그릇째 냉장실에 넣어두는 것이 좋다고 하지요.
이런 균들은 저온 상태에서 단지 생존이 가능할 뿐이지만, 개중에는 저온 상태에서 오히려 잘 자라는 별종들도 존재합니다. 여시니아균의 경우, 빙점에 가까운 저온에서도 얼마든지 번식할 수 있어서 여시니아균으로 오염된 물과 우유, 유제품, 육류 등은 냉장고 속에 넣어두어도 계속해서 번식하여 숫자를 늘려 나갑니다. 또한 곰팡이의 일종인 푸른곰팡이는 10℃이하 저온에서 활발하게 번식하므로 신선한 상태에서 냉장고 속에 넣어둔 채소나 과일, 식빵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이들에게서 푸르게 피어난 곰팡이 자국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요.

냉장고 속 저장 음식의 안전성
그럼, 저온세균만 주의하면 냉장고에 보관한 음식은 믿을 수 있을까요?
아쉽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도 ‘No’입니다. 식중독은 살아있는 세균이나 노로바이러스처럼 미생물 그 자체가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미생물이 만들어 분비한 독소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황색포도상구균이 만들어낸 독소입니다. 황색포도상구균은 추위에 민감해 냉장고에 넣어두면 거의 죽어버리며, 열에도 약해 끓이면 바로 사멸하지만, 이들이 만들어서 분비한 장독소라는 일종의 식중독 독소는 냉장고 속에 넣어두어도 파괴되지 않으며, 심지어 이들은 100℃에서 60분간 끓여야 겨우 없어질 정도로 내열성이 강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미 황색포도상구균이 자라고 있던 식재료는 저온 보관해서 익혀 먹는다고 해도 식중독을 예방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런 이유로 실온에 방치된 우유는 이제 더 이상 식용이 아니라, 맛사지용이 되어 냉장고가 아닌 목욕탕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피부 미용을 위해서 우유맛사지를 하는 경우에는 시큼한 냄새가 나는 상한 우유가 신선한 우유보다 더 좋다고 합니다. 상한 우유 속에 들어 있는 젖산 성분은 피부의 각질과 노폐물을 녹이는데 효과가 좋거든요. 물론 냄새는 좀 감수하셔야하겠지만 말입니다.
냉장고는 식품이 본래 지닌 효소의 활성을 저해하고 미생물의 활동을 억제시켜 식품의 신선도를 유지시켜주는 유용한 존재입니다. 이 유용한 존재가 계속해서 우리 삶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지요. 냉장고의 기능은 원래 신선했던 식품의 신선도를 ‘조금 더 오래’ 유지시켜줄 뿐, ‘계속’ 유지시킬 수는 없으며, 처음부터 미생물에 상당히 오염된 음식물이라면 이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죠. 그 것만 주의한다면 우리는 더운 여름철에도 기름진 돼지고기와 신선한 생선회를 실컷 먹고 난 뒤 입가심으로 얼음처럼 시원한 수박과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얼마든지 음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인에게는 익숙한 이 평범한 일상 은 천하를 호령하던 진시황도 누리지 못했던 호사라고 합니다. 좋은 것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기억해 둬야할 것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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