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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단풍과 낙엽

2016-10-14

단풍과 낙엽
사람들은 대부분 놀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사람들이 많고 북적여도 봄에는 꽃놀이를 가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가는 것이겠죠. 꽃놀이 물놀이 다음에는 단풍놀이입니다. 해마다 10월이면 전국의 주요 명산에는 단풍 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데요, 봄의 꽃놀이가 밝고 명랑하다면 가을의 단풍놀이는 풍성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지요. 그런데 도대체 가을철이 되면 왜 나무들은 이렇게 잎사귀들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는 것일까요. 사람보기 좋으라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사계절이 존재하는 지역에서는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선선해지는 가을이 되면 많은 나무들이 초록색 잎사귀들을 빨강, 노랑, 갈색으로 변신시켰다가 찬바람과 함께 낙엽이 되어 우수수 떨어뜨립니다. 그리고는 봄이 되면 다시 연둣빛 새 잎사귀를 뾰족이 피워냅니다. 마치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사람처럼 말이죠. 그런데 왜 나무들은 번거롭게 잎을 피웠다 색을 바꿨다 떨어뜨리는 일을 반복하는 걸까요?
사실 모든 나무들이 이렇지는 않습니다. 사시사철 더운 지역에서는 나뭇잎은 일년 내내 초록빛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꺼번에 낙엽을 떨구는 일도 없고요. 단풍과 낙엽은 사실 나무가 겨울이라는 혹독한 계절을 대비하는 노력의 결실이랍니다.


나뭇잎의 역할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왜 나뭇잎이 하는 일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나뭇잎은 나무가 먹고 사는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나뭇잎의 초록색을 띠는 이유는 나뭇잎을 이루는 세포 안에 엽록소(葉綠素, chlorophyll)라는 초록색 색소체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엽록소는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포도당 생성 오븐입니다.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물과 밀가루, 설탕과 버터, 효모 등을 잘 섞은 뒤 이를 반죽해 오븐에 넣고 빵을 구워냅니다. 이렇게 잘 구워진 빵은 한 끼 식사나 간식거리로 우리에게 열량을 제공해 줍니다. 식물에게 있어 엽록소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뿌리가 빨아들인 물을 재료로 해서 열량원인 포도당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포도당 생성 오븐입니다. 아무리 반죽을 잘 해도 오븐에 전기가 가스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충분한 온도를 낼 수 없다면 빵을 구울 수 없듯이, 엽록소에 이산화탄소와 물이 아무리 많이 공급되어도 이 엽록소를 가동시킬 에너지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죠. 이 때 엽록소가 사용하는 에너지원이 바로 태양빛입니다. 이렇게 엽록소는 태양빛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해 물과 이산화탄소를 반응시켜 포도당과 산소를 만들어내는데, 이 때 빛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하여 이를 광합성(光合成, photosynthesis)이라 하지요. 식물에게 있어 엽록소는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식물은 상당량의 엽록소를 가지고 있고, 이로 인해 나뭇잎이나 풀잎은 주로 초록색을 띄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식물의 엽록소는 초록색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분명 식물의 엽록소는 광합성 과정에서 빛을 흡수해 에너지원으로 이용합니다. 이 때 엽록소가 주로 흡수하는 빛의 파장은 가시광선 중 파장이 짧은 청색빛(파장 400~500)과 파장이 긴 적색에서 황적색(파장 620~700nm)을 띄는 빛입니다. 하지만 이 두 파장 사이에 있는 초록색 빛(파장 500~600nm)은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식물은 자신이 받아들인 태양빛 중에 파란빛과 빨간빛, 황적색빛은 그대로 흡수하고, 쓸모없는 초록색빛은 다시 반사해버립니다. 우리가 나뭇잎이나 풀을 볼 때는 엽록소가 자신이 쓰기 위해 흡수해 버린 빛은 감춰져서 보이지 않고, 쓸모없다고 내친 빛만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것이죠. 엽록소가 풍부해서 광합성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식물의 부위일수록 유독 초록색만 골라서 내치니 더 짙은 녹음이 느껴집니다. 다시 말해 식물의 잎이 초록색이라고, 식물을 키울 때 초록색 빛만 골라서 쬐어 주면 오히려 식물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죠.
둘째, 나뭇잎은 수분을 증발시켜 나무의 체온을 유지하는 작용을 합니다. 사람은 날이 더워지면 땀을 흘려서 체온을 조절합니다. 물이 증발할 때는 주변의 열을 빼앗기 때문에 약간 시원해지는 효과가 있거든요. 그런데 땀을 흘릴 수 없는 나무는 여름이 되어 기온이 올라가면 나뭇잎 뒤편에 있는 ‘기공’이라는 구멍을 통해 수증기를 증발시켜 체온을 조절한답니다. 나뭇잎이 수증기를 내뿜는다는 것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할 수 있어요. 덥고 습한 여름날, 커다란 나뭇잎을 골라 투명한 비닐봉지를 씌우고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입구 부위를 꼭 조인 채 하루 정도 놓아 두세요. 그러면 물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비닐봉지 안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에요. 그 물방울이 바로 나뭇잎이 기공을 통해 내보낸 물이랍니다.
나무에서는 녹색을 띠는 나뭇잎은 엽록체가 있는 부위이고,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부위입니다. 따라서 나무는 햇빛이 강하고 강우량이 풍부한 여름철이면 무성하게 잎을 틔워서 더 많은 빛을 받을 수 있게 하고, 더 많은 포도당을 만들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이 기간 동안에 풍성한 나뭇잎은 나무를 살찌우게 하는 기본 바탕입니다. 하지만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되면 무성한 잎들은 골칫거리가 되어 갑니다. 가을과 겨울에는 햇빛이 약해 여름처럼 광합성을 많이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잎의 기공을 통해 나무의 수분은 계속 증발하거든요. 습하고 더운 여름에야 이 정도는 땀 흘리는 셈 치고 넘어갔지만, 건조한 겨울에는 이렇게 계속 수분을 잃게 되면 당장에 말라죽고 말 겁니다. 따라서 나무는 겨울을 위한 절약 대책으로 대규모 인원 감축을 실시하게 됩니다.



단풍과 낙엽의 신비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먼저 나뭇잎 속에 들어 있던 물질들을 갈무리해 쓸만한 것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 저장합니다. 이 때 엽록소도 분해되어 다른 곳에 저장됩니다. 이렇게 나뭇잎의 엽록체가 사라지고 나면 그동안 엽록체의 짙은 초록색 때문에 가려져 있던 나뭇잎 속에 든 구성성분의 색깔들이 드러납니다. 단풍나무의 붉은 잎은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 때문이고, 은행나무의 노란 잎은 카로티노이드라는 성분 때문이며, 떡갈나무의 갈색 잎은 탄닌 성분 때문이에요. 나무는 이처럼 먼저 엽록소를 모두 분해시킨 뒤, 다음에는 나뭇잎에 남아 있던 수분을 모조리 흡수하여 줄기 안쪽이나 뿌리 깊은 곳에 저장해둡니다. 이제 나뭇잎은 초록색도 잃었을 뿐 아니라 힘 주어 잡으면 파사삭 부서질 정도로 바싹 말라버립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나뭇잎이 가지에 붙어있는 부분이 변화되며 가지에서 나뭇잎을 떨어뜨려 버립니다. 그래서 가을이 시작되는 순간에는 초록빛 나뭇잎들이 노랗고 붉은빛을 선명하게 가지게 되었다가, 가을이 깊어갈수록 점점 색이 바래고 바싹 마른 낙엽들만 나무둥치에 그득하게 쌓이게 되는 것이죠.
얼핏 생각해보면 여름내 힘들게 만들었던 나뭇잎들을 가을이 되었다고 한꺼번에 떨어뜨려 버린다는 것이 일종의 낭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연계는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지는 않는답니다. 나무의 발치에 쌓인 낙엽들은 토양에 서식하는 각종 미생물들에 의해 분해되어 흙으로 스며들고, 다시 나무는 흙 속으로 돌아온 영양분들을 흡수해 다음해 새로운 잎들을 피워내는 것이죠. 만약 나무가 낙엽을 떨구지 않는다면 당장의 수분 부족을 걱정해야 할 뿐 아니라, 내년에 새로운 잎을 피워내는데 필요한 영양분이 부족해 결국 나무는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계의 기본 원리는 끊임없는 순환입니다. 한 알의 씨앗이 자라 아름드리나무가 되는 과정은 마술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그 씨앗을 품은 대지가 나무를 키워낼만큼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죠.


썪지 않는 나뭇잎


지난 봄, TV 뉴스에서 봄이 와도 여전히 썩지 않고 쌓여있는 나뭇잎이 많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곳은 취재를 하러 간 기자의 무릎이 빠질 정도로 낙엽이 많이 쌓인 곳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작년 가을 뿐 아니라 2~3년 전에 떨어진 낙엽이 썩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쌓이는 낙엽을 다시 토양으로 되돌려주던 미생물들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대기오염으로 인해 각종 해로운 물질이 섞인 산성비가 내려 낙엽을 썩게 만들었던 미생물들을 죽여 버렸기 때문이에요. 미생물들이 죽었으니 낙엽은 썩지 않고 그대로 쌓이게 되었고, 봄이 와도 숲은 온통 낙엽 천지가 된 것이죠. 이렇게 두껍게 쌓인 낙엽으로 인해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들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고 최악의 경우 대규모 산불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바싹 마른 낙엽은 좋은 불쏘시개감이니까요. 생태계의 순환은 매우 자연스럽고 완벽하지만, 그만큼 한 군데가 이지러지게 되면 전체의 과정이 깨어질 수도 있답니다. 가을이 오면 낙엽이 지고, 봄이 오면 새순이 돋아나는 생태계의 순환 과정이 오래도록 이어지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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