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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크리스마스 과학강연의 전통

2016-12-23

크리스마스 과학강연의 전통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인데요, 언젠가부터 특정 종교의 관련 여부와는 상관없이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연인들이 함께 하며 선물을 나누는 날이 되었습니다. 저희 집 세 아이들 중에 다섯 살 쌍둥이는 아직 산타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이미 산타할아버지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을 적은 편지를 보냈지요. 물론 그 편지는 엄마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내준다고 하여 받아서는 그 안에 적힌 품목들을 구하는데 쓰긴 했지만요.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에는 예쁘게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선물, 케이크, 산타와 루돌프가 찾아옵니다만, 과학자들에게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돌아오는 전통이 있습니다. 바로 크리스마스 과학강연입니다.

크리스마스 과학강연의 역사
크리스마스 과학강연, 원어로는 christmas lecuture 라고 하는 이 강연회는 1825년 영국의 왕립학회에서 시작되었는데요, 과학자들이 논문을 발효하는 학회가 아니라, 과학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과학의 원리와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들을 제공하는 대중과학강연회입니다. 이 크리스마스 렉쳐는 제 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39~42년의 4년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20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는 유서깊은 강연회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강연회를 거쳐간 과학자들의 면면도 범상치 않은데요, 이 강연의 기획자이자 초대 강연자였던 마이클 패러데이를 비롯해, ‘털없는 원숭이’를 쓴 데즈먼드 모리스(1964), ‘코스모스’로 유명한 칼 세이건(1977),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1991) 등도 강연자로 나선 바 있습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 렉쳐 강연자는 영국의 재료화학자인 사이풀 이슬람(Saiful Islam) 교수로, 리튬이온 배터리나 액체 산소 전지 등을 개발하는데 많은 공헌을 한 인물로, ‘Supercharged: Fuelling the future’라는 제목으로 미래의 연료전지에 대한 강연을 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몇 년 전부터 한양대 최정훈 교수님이 크리스마스 즈음마다 비슷한 취지의 강연을 시도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 교수님이 직접 산타 분장을 하고 아이들에게 선물도 직접 나눠주신다고 합니다.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와 크리스마스 렉쳐
크리스마스 렉쳐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패러데이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이 분은 제가 생각하기에 과학자로써 더할 나위없는 ‘모범적인’ 분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인물입니다. 마이클 패러데이(1791~1867)입니다. 전기화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패러데이는 그의 업적만 봐도 위용이 화려합니다. 염소와 탄소를 이용한 두 가지의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기도 하였고, 큰 압력 아래서 가열하여 염소 뿐 아니라 암모니아, 이산화탄소, 이산화황, 산화질소, 염화수소, 황화수소, 시아노겐, 에테인 등 많은 물질들의 액화에도 성공함으로써 물질의 상태를 온도가 아닌 압력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즉, 그는 기체, 액체, 그리고 고체는 호환성이 있으며, 한 가지 상태에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죠. 또한 패러데이는 현대 화학의 중요한 재료가 되었던 벤젠을 찾아냈으며,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만들 때 유용한 광학용 유리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전기화학 분야에서는 전자기 유도 현상을 찾아내, 발전기와 전동기 등 현대 문명을 떠받치는 전기 기술 분야의 근본을 세우기도 했고, 물질을 전기를 통해 분해하는 전기분해의 원리도 찾아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패러데이의 이름 뒤에는 늘 ‘못배운 과학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그는 제대로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 패러데이의 유년시절
패러데이는 1791년 영국의 노잉턴에서 가난한 대장장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줄 형편이 되지 못해서 패러데이는 겨우 읽고 쓸 줄 아는 정도만 어깨 너머로 배운 상태로, 14살에 서점 견습생으로 보내집니다. 한마디로 14살짜리 소년이 부모의 품을 떠나 제 손으로 밥벌이를 하러 간 셈이죠. 패러데이는 서점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낮에는 책을 제본하는 법을 배웠고, 밤이면 자신이 제본한 책들을 읽어 나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십대 소년 패러데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화학자 제임스 타이틀러가 쓴 ‘화학의 대화’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었다고 합니다. 패러데이는 힘든 와중에서도 책을 읽었고, 나중에는 자신의 생각을 공책에 적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공책은 나중에 제본 기술자였던 패러데이가 직접 제본해서 자신만의 책으로 만들어내게 되지요. 19살이 되자, 이렇게 직접 제본한 책이 4권이나 되었는데, 이 것을 기특하게 여긴 서점 주인이 손님들에게 패러데이가 쓴 책을 자랑했고, 손님 중 한 명이었던 왕립연구소 회원 윌리엄 댄스는 이 똘똘하고 성실한 어린 소년에게 당시 왕립연구소의 인기 과학자였던 험프리 데이비의 화학 강연회 티켓을 선물하게 됩니다. 그 때 마침, 데이비는 화학 실험을 하던 도중 폭발 사고를 당해 눈을 다치게 됩니다. 당분간 실험 보고서를 쓸 수 없게 된 데이비는 자신 대신에 실험 노트를 써줄 조수를 찾게 되고, 댄스의 추천으로 패러데이가 발탁되지요. 데이비의 조수로 실험 노트를 관찰하면서 직접 실험을 보조하게 된 패러데이는 다시는 제본 기능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데이비에게 자신도 연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이 젊은이의 성실함과 재능을 알아본 데이비는 패러데이를 정식으로 왕립협회의 조수 겸 비서로 고용하지요. 이후 패러데이는 본격적으로 과학자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스승보다 더 유명한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오래도록 아름답게 남은 것은 더없이 겸손하고 욕심이 없던 그의 인성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그 어떤 것도 특허를 내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했고, 봉급 인상 제안을 거절했으며, 심지어 말년에 그의 성과를 기려 왕실에서 내리는 귀족 작위도 거절했습니다. 대신 그가 신경썼던 것은 과학이란 학문이 모든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과학에 대한 책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우연히 얻은 데이비의 화학 강연회 티켓 한 장으로 인생의 진로가 바뀌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런 기회를 다른 아이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1826년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강연회’를 기획했고, 매해 크리스마스가 될 때마다 ‘과학의 산타 할아버지’가 되어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 영국 화폐 중 20파운드에 그려진 그림이 바로 패러데이의 크리스마스 강연회를 그린 것이랍니다.

패러데이의 양초
패러데이가 크리스마스 강연회에서 자주 사용하던 소품은 양초였습니다. 그는 양초 한 자루를 들고 불을 붙인 뒤, 양초의 재료와 양초가 타오르는 원리, 산소와 탄소와 수소의 관계, 연소 과정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강연은 [양초 한자루에 담긴 화학이야기]라는 제목으로 1860년 책으로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번에 양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양초를 과학적 설명의 도구로 삼은 사람이 바로 패러데이였지요. 그리고 패러데이는 양초의 과학에 대한 강연을 마치면서 늘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강연의 마지막 말로서 여러분의 생명이 양초처럼 오래 계속되어 이웃을 위한 밝은 빛으로 빛나고, 여러분의 모든 행동이 양초의 불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여러분이 인류의 복지를 위한 의무를 수행하는 데 전 생명을 바쳐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마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전국의 광장에 그 어떤 때보다 많은 촛불이 밝혀질 듯 합니다. 패러데이가 한 말처럼 그 촛불처럼 인류의 복지를 위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생각해보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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