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연말이 되면 많은 이들이 한 것도 없이 한살씩 더 나이만 먹어간다는 것에 대해 쓸쓸함과 조급함을 느끼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야 빨리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는 것이 기다려졌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다보니 한 살 더 먹고 한 해 더 늙어 간다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이렇게 늙어가는 이야기를 하니 그리스 신화 속 시빌레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아폴론과 시빌레
인간이지만, 너무나 아름다웠던 시빌레에게 홀딱 빠진 태양의 신 아폴론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뭐든 그녀에게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이에 시빌레는 바닷가의 모래를 한 줌 쥐고, 이 모래알의 개수만큼의 햇수를 수명으로 달라고 합니다. 아폴론은 이 소원을 들어주었으나, 시빌레는 깜빡 잊고 영원한 젊음을 같이 달라는 소원을 비는 것을 잊었습니다. 만약 그랬더라도 시빌레가 아폴론의 구애를 받아들였더라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겠지만, 결국은 아폴론을 거절했기에 화가 난 그는 그녀가 수백년 동안 속절없이 늙어가도록 만듭니다. 결국 그녀는 너무 늙고 쪼그라들어 나뭇잎처럼 가벼워졌지만, 아직도 삼백번의 봄과 삼백번의 가을을 맞이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에 울음을 터트립니다. 시빌레의 몸은 그대로 작아져 귀뚜라미가 되었다지요.

노화현상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자라다가 늙어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천하의 진시황조차도 그렇게도 염원하던 불로장생(不老長生)에 실패하고 결국 한 줌의 흙으로 사그라들었지요. 이처럼 노화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오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노화를 피하려고만 합니다. 그렇다면 노화란 과연 무엇일까요?
노화란 생물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체 기능이 퇴화되는 현상입니다. 세포의 노화는 세포가 분열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나타나고요, 전체적으로는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이 감소하고 항상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며 신체가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고 면역력이 저하되며 질병에 걸리는 위험이 증가하는 것이 특징이지요.

노화의 원인
학자들은 노화가 일어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유전자에 기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적인 요인에 의한 것입니다. 노화의 원인이 두 가지 원인 중 어느 쪽에 더 큰 책임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전자라면 노화란 우리의 유전 코드 속에 내재된 숙명이 되는 것이고, 후자라면 노화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막거나 늦출 수 있는 ‘질병’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노화가 우리 유전자 속에 프로그램되어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는 조로증(早老症)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조로증이란 말 그대로 지나치게 빨리 늙는 질병입니다.유전적인 원인에 의한 여러가지 종류의 조로증이 발견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로증들은 전세계에서도 그 환자가 수십명에 불과한 희귀한 질환이기 때문에, 이를 모든 노화의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화를 촉진하는 환경적인 원인에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인간의 몸도 기계처럼 오래 사용하면 닳아서 마모된다는 인체 소모설, 세포 분열할 때마다 생겨나는 DNA의 오류가 쌓여서 문제가 생긴다는 DNA 오류설, 대사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유해산소에 의해 단백질이 변성되는 것이 반복되어 일어나는 유해산소설 등이 있습니다. 실제로 힘든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이 더 빨리 늙고, 담배나 유해물질로 인해 DNA 오류를 일으킬 확률이 높고, 유해산소를 많이 만들어내는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늙어간다는 예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명 연장의 비밀
이 쯤이면 노화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부라도 원인을 알게 되면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도, 늦출 수는 있을테지요. 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유달리 오래 산다는 장수촌의 비밀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소식(小食)'입니다.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미국의 리처드 와인드럭(Richard Weindruch)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저칼로리 식단을 제공한 원숭이들이 그렇지 않은 원숭이들에 비해 장수할 뿐 아니라 건강 상태로 았다고 합니다. 와인드럭 교수팀은 성인 원숭이 76마리를 두 팀으로 나누어 한 쪽은 일반 식단을, 다른 한 쪽은 이에 비해 열량이 30% 정도 낮은 저칼로리 식단을 제공한 채 무려 20년 동안을 관찰했는데요, 그 결과 20년 후 보통의 식사를 한 원숭이는 약 13%만이 살아남은데 반해, 저칼로리 식단을 제공받은 원숭이는 이보다 3배에 가까운 37%가 생존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소식을 한 쪽이 그렇지 않은 쪽에 비해 심장병이나 암, 당뇨, 퇴행성 뇌질환과 같은 성인병에 걸리는 비율이 더 낮았고요. 저칼로리의 식단은 수명을 연장시킬 뿐 아니라, 건강까지 보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수명 연장에 기여한다고 해도 보통의 사람들이 꾸준한 저칼로리 식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요즘 세상엔 맛나고 칼로리가 높은 음식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동일한 식사를 하더라도 체내에 흡수되는 열량을 줄이는 약물을 통해 동일한 노화 방지 효과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텍사스대 건강과학센터 연구진은 네이처(Nature)지에 생쥐의 수명을 늘리는 물질인 라파마이신(rapamycin)을 찾아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라파마이신은 인체에서 칼로리 섭취에 관여하는 TOR이라는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해 칼로리 섭취를 억제하는데, 이것만으로도 수컷 생쥐의 수명은 28%, 암컷 생쥐의 수명은 38% 가량 늘어났다고 발표한 것이죠.

회춘의 물질
여기까지는 단지 노화를 느리게 만드는 것이지만, 최근에는 아예 시간을 거꾸로 돌려 회춘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의대 이마이 신이치로 박사팀은 생쥐에게 니코틴아미드 모노 뉴클레오티드’(NMN)라는 물질을 투여해 당뇨병과의 연관성을 살폈습니다. 당뇨병은 인슐린의 부족 혹은 기능 이상으로 일어나는 질환인데, 고열량고지방의 식습관과 노화와 비례해 증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쥐를 이용한 실험의 경우, 정상적인 쥐에게 정상적인 먹이를 주더라도 나이가 들면 15%는 당뇨에 걸리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또한 고지방의 먹이를 주면 6개월이면 당뇨에 걸렸구요. 하지만 NMN라는 물질을 투여하자, 당뇨병의 증상이 사라졌는데, 단지 인슐린의 분비량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22개월(사람으로 치면 60세)의 된 생쥐의 혈액 내의 포도당 분해 곡선과 콜레스테롤 수치, 혈액 내 지방산 수치가 마치 6개월(사람으로 치면 20세)된 젊은 생쥐의 그것처럼 회복되었다는 것이 발견한 것입니다. 즉, 세포가 이전보다 건강하고 젊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 물질을 잘 이용한다면, 사람도 다시 젊어질 수 있을까요? 사실 그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있더라도 미미할지, 아니면 오히려 해로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요. 분명한 것은 지금도 세계 각국의 많은 연구진들은 노화를 막거나 진행 속도를 더디게 하기 위해 노화의 비밀을 풀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노화의 비밀을 밝혀내어 노화를 막는 방법을 개발해낸다면 이 것이 우리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이죠. 사실 생명체가 늙어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생명체는 생식을 통해 개체수를 늘리고 번성합니다.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생명체는 무한정 증식이 가능하지만, 이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은 한정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전 세대는 환경을 일정 시간 향유한 뒤, 다음 세대를 위해 이를 넘겨주는 과정이 수십억년 동안 자연스레 일어난 일이었지요. 이전 세대는 번식을 끝낸 뒤, 노화를 통해 생명 활동을 스스로 조금씩 정지시켜 다시 환경 속으로 돌아가고 그들이 잠시 누렸던 삶의 에너지는 다음 세대를 통해 전달되는 식으로 말입니다. 오랜 세월, 이런 현상이 자연스레 반복되었던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노화와 죽음과 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노화 연구의 목적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좀더 건강하고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지, 진시황이 꿈꾸던 것처럼 불로불사의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것으로는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