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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전자인간 시대의 개막

2017-01-27

전자인간 시대의 개막
로봇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어릴적 보던 태권 브이에 등장하는 깡통 로봇부터 사람과 똑같이 생긴 A.I.의 아이 로봇 데이빗처럼 대중매체 속에서 등장하는 로봇의 모습부터 실제로 움직이는 인간형 로봇 아시모나 휴보 등을 떠올리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얼마 전 유럽연합(EU)이 로봇의 법적 지위를 '전자 인간(Electronic Person)'으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는 뉴스를 보고는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상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로봇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합니다.


로봇 ‘전자인간’
지난 1월 12일, 유럽 EU 의회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장착하고 스스로 작동하는 로봇에 대해 '전자 인간(electronic person)'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안을 놓고 찬성 17표, 반대 2표, 기권 2표로 통과시켰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장차 구체화 될 것 같은 인공지능 로봇의 개발과 활용에 대해서 기술적이고 윤리적 지침을 제시한 것인데요, 의회 조사위원인 매디 델보는 "우리 일상 속에서 로봇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며 "이러한 현실에 발맞춰 로봇이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임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EU 내 탄탄한 법적 프레임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EU 의회는 AI에 대한 기술적·윤리적 기준을 적용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 내 'EU 로봇국'을 신설하고, 로봇이 윤리적 기준에 따라 작동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제시안에서 특이하게 눈길을 끄는 것은 '킬 스위치'입니다. 킬 스위치란 로봇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오류, 해킹 등 비상 상황에서 로봇을 즉각 멈출 수 있는 올 스톱 스위치로, 로봇의 오작동이나 폭주를 막을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또한 이들은 모든 로봇은 당국에 등록해야 하고 만일 로봇이 사고를 낼 시, 당국이 시스템 코드에 접근할 수 있게 해서 로봇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담고 있습니다. 이 제시안들을 보고 있자니 인류가 처음 로봇이라는 존재를 상상하기 시작한 그 때부터 가졌던 원천적인 공포가 현실화되는 것처럼 보여서 조금 섬찟하기도 하더군요.


로봇 개념의 등장
로봇(robot)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낸 것은 과학자나 공학자가 아니라, 체코의 극작가였던 카렐 차펙(Karel Čapek, 1890~1938)입니다. 직접 각본을 쓰고 연극을 연출하는 제작자이기도 했던 차펙은 1921년, ‘로섬의 만능 로봇’이라는 연극 대본을 쓰고 이를 직접 제작했는데요, 여기서 처음 로봇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로봇은 차펙이 만들어낸 단어로 체코어로 ‘힘든 일’을 뜻하는 로보타(robota)에서 유래된 말로, ‘사람이 만들어 냈고, 사람을 닮았지만, 사람 대신 힘든 일을 해주는 기계’에 로봇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차펙이 만들어낸 스토리입니다. 원래 이 연극에서 등장하는 로봇들은 말 그대로 사람 대신 힘든 일만 하다가 고장 나면 버려지는 가전제품 같은 존재였는데요, 어느 날 우연히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켜 사람들을 내쫓고 로봇들의 세상을 만드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처음 로봇을 상상했을 때부터 로봇이 인간에게 유용한 동시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예측했던 것이죠.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과학소설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앞으로 로봇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로봇이 인간을 해칠 수 없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로봇공학 3원칙’에 준해서 로봇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지요.


로봇의 다양한 기능
지금까지는 로봇이 일부러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가끔 기계의 오작동이나 사용자의 부주의가 문제가 되어 사고가 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그 것은 일종의 교통 사고와 같은 범주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일어나는 일련의 변화들은 이와 같은 아슬아슬한 균형이 더 이상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지요.
가장 큰 계기 중 하나였던 것은 작년 7월 미국에서 있었던 ‘2016년 댈러스 저격사건’입니다. 미국 텍사스 주의 댈러스에서 일어났던 총기 사건으로, 군인 출신인 25세의 흑인 청년 마이카 제이비어 존슨(Micah Xavier Johnson)이 경찰을 상대로 벌인 저격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이틀 전, 미국에서는 두 명의 흑인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댈러스 지역에서는 흑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찰의 과잉 대응을 비판하는 시위(Black Lives Matter)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도로 마이카 존슨이 시위대를 제어하기 위해 출동했던 경찰들만을 골라서 저격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17명의 경찰 중 12명이 총에 맞았고, 이 중에 5명이 사망하는 끔직한 일이 벌여졌습니다. 경찰이 아닌 시위대의 시민 몇 명도 총에 맞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고요. 몇 차례 저격범과 대화를 시도하던 경찰 측은 그가 투항하거나 협상할 여지가 보이지 않자, 그를 제압하기 위해 로봇을 이용합니다. 즉, 저격범이 숨어 있는 건물 내부로 근처로 폭탄을 실은 로봇(Bomb robot)을 들여보냈고, 원격조정으로 폭탄을 터트려 범인을 사살한 것이죠. 사람이 아니라, 로봇에 무기를 장착시켜 전투를 수행하게 한다는 아이디어는 이미 이전부터 있어왔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무인 드론들이 폭탄을 장치하고 타격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 내에서 자국민을 상대로 로봇이 폭탄을 터트려 살상을 한 경우는 처음이라 이 사건은 꽤나 파장이 컸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이미 범인이 여러명의 경찰들을 살해한 뒤였고, 화기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기에 이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경찰들의 인명 피해가 불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에 로봇을 이용해 사건을 종결시키는 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은 ‘로봇에 의해 죽을 수도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셈이죠.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원래 이 로봇은 인명 살상용이 아니라, 지뢰밭이나 폭탄 테러 현장에서 폭발물을 해체하고 인명을 구조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도적인 로봇’이었는데, 오히려 폭탄을 담아 사람을 죽이는데 이용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봇과 인간의 공존
최근 이렇듯 로봇과 인간의 공존 문제가 서서히 가시화되자 EU 의회에서는 이에 대한 기술적이고 윤리적인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죠. 하지만 EU 의회의 결의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글로벌 로펌 오스본 클라크(Osborne Clarke)의 법 전문가 애쉴리 모건에 따르면 이 결의안에서는 로봇을 인조인간이 아니라, 전자 인간으로 정의했기 때문에 결국엔 로봇에 인간과 같은 권리를 보유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정한 셈이고, 이는 나아가 인간과 로봇의 지적재산권 다툼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모건은 “만약 내가 만든 AI 로봇이 스스로 음악을 작곡했다면, 그 음악의 지적재산권은 나에게 있는 것인가 혹은 로봇에게 있는 것인가?”라며 “이 문제는 앞으로 AI 로봇 제조사들의 큰 골칫덩이가 될 것”이라 덧붙였습니다. 이미 로봇은 저작권이 허용되는 분야에 진출해 있습니다. 미국의 LA 타임즈는 퀘이크봇이라는 기자 로봇을 이용해 신문 기사를 작성하고 있고, 영국의 가디언지에는 편집자 로봇을 이용해 사람들이 많이 보고 댓글이 많이 달린 기사만 따로 선별해 ‘길지만 좋은 읽을 거리(The Long Good Read)'라는 주간신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는 일본에서 로봇이 쓴 소설이 ’니케이 호시 신이치‘ 문학상 공모전에서 예심을 통과한 적도 있습니다. 작곡가 로봇 쿨리타가 작곡한 음악은 사람이 만든 것과 거의 구별할 수 없으며, 화가 로봇 아론이 그린 그림을 보고 이 것이 로봇이 그린 것이라는 걸 알아차린 사람은 거의 없었거든요. 그럼 이 기사와 소설, 음악과 그림은 누구의 것일까요?
EU 회원국들이 이 결의안을 토대로 각자 자국 내에서 추가적인 논의와 수정을 거친 뒤, 공식적으로 EU의 ‘로봇시민법’을 제정할 계획입니다. 법이 제정되면 EU에 로봇·AI 등을 수출하는 회원국 이외의 국가들도 관련 규정을 따라야 해, 사실상 전 세계 로봇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로봇 윤리·기술 규정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결의안은 2월 중에 있을 EU 본회의에서 본격적으로 논의 될 예정인데, 어떻게 결론이 날지 사뭇 궁금합니다.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삶의 편리함 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법적, 윤리적, 제도적, 문화적 변화까지 모두 수반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참으로 궁금해진다는 건 덤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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