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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미세먼지와 치매

2017-02-24

미세먼지와 치매
예부터 알 수 없는 질병이 유행을 하면 공기가 오염되어 있어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항생제가 개발 되기 이전 시절, 폐질환이나 호흡기 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유일하게 조언해 줄 수 있었던 것은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요양하는 것’이었지요. 실제로 오염되고 탁한 공기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여겨져서 여기서 탄생한 질병의 이름도 있습니다. 바로 말라리아라는 말인데요, 우리말로는 학질이라고 불리는 말라리아는 원래 이탈리아어로 ‘나쁜’이라는 뜻을 지닌 ‘mal’과 ‘공기’라는 뜻의 ‘aria’가 더해진 단어로, 어원은 ‘나쁜 공기’라는 뜻입니다. 지금에야 말라리아가 모기에 물려 전염되는 것이라는 걸 다 알지만, 말라리아의 전염 경로를 몰랐던 옛 사람들은 말라리아가 ‘나쁜 공기’ 즉, 일종의 ‘독기(毒氣)’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던 것이죠. 이제 더 이상 말라리아가 나쁜 공기 때문에 일어나는 질병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오염된 공기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생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요즘 들어 특히 심해지는 대기중 미세먼지입니다.

사실 예부터 바람이 잦은 봄이 되면, 대륙의 건조한 사막에서 불어오는 흙먼지 섞인 바람이 우리나라까지 날아와 황사나 혹은 토우를 일으키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황사가 일어나는 시기도 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을에서 겨울, 봄까지 3계절로 늘어났고, 그 바람 안에 섞이는 것들도 단순한 흙먼지들이 아니라, 중금속과 유독물질이 섞인 다양한 미세먼지들로 확장되어 사람들을 더더욱 걱정시키고 있습니다. 미세먼지로 인해 눈과 코와 입이 따갑고, 이로 인해 알레르기성 호흡기 질환이라던가 각막염 등이 늘어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미세먼지가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 중 하나인 치매 유발에도 만만찮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월 27일, 과학학술지 사이언즈 자에는 ‘오염된 뇌(The Polluted Brain)’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사람들이 미세먼지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뇌가 파괴돼 신경퇴행성질환이 나타난다는 걸 보여준 여러 연구결과들을 분석해 소개하고 있었지요.
미세먼지가 폐뿐만 아니라 뇌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 본격적인 연구결과는 2002년 나왔습니다. 멕시코와 미국, 캐나다 공동 연구자들은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은 도시인 멕시코시티에서 사고로 죽은 유기견 32마리의 뇌를 검사한 결과 대기오염이 덜한 도시인 틀라스칼라의 개들(대조군)에 비해 뇌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멕시코시티 개들의 뇌세포에는 염증관련 분자의 수치가 높았고 신경세포 손상율도 높았지요. 그리고 알츠하이머 치매의 지표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도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개도 나이가 많이 들면 사람처럼 인지력이 떨어지면서 그 중에는 치매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배변 훈련을 잊어버린다거나 심지어 주인을 잘 몰라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관찰 결과를 토대로 연구자들은 대기오염원 가운데 미세먼지와 오존이 이런 증상을 일으키는 주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특히나 지름이 0.2마이크로미터(200나노미터) 미만인 극미세먼지가 문제로, 이런 입자들은 숨을 쉴 때 폐 깊숙이 들어가 세포에 침투한 뒤 다른 세포로 확산되는데, 이들은 너무 작아서 일단 들어오면 내보낼 수 없지만, 이들을 이물질로 인식한 면역세포들에 의해 염증 반응을 유발하게 됩니다. 이렇게 초기에는 호흡기와 폐에서 일어난 초미세먼지에 의한 염증 반응은 이 극미세먼지들이 혈관을 따라 뇌까지 들어가면서 염증 반응을 일으켰고, 이 것이 자극이 되어 뇌세포들의 손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연구팀들은 멕시코시티에서 사고로 죽은 어린이와 젊은이의 뇌를 조사한 결과, 아직 치매가 발생할 나이에서 한참이나 어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뇌에도 역시 과도한 염증과 단백질 침착 등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 뒤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연구가 이어집니다.
그 연구결과 중 하나가 ‘랜싯’ 1월 4일자에 실린 캐나다 연구진의 결과입니다. 캐나다 공중보건온타리오의 홍 첸 박사팀 등 공동연구자들은 온타리오주에 살고 있는 성인 대다수에 해당하는 66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장기적인 역학조사자료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거주지가 차가 많이 다니는 주도로에서 50m 미만 거리일 경우 200m 이상인 경우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성이 12%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2%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고령사회가 되면서 치매에 걸릴 위험성 자체가 워낙 높아지기 때문에-85세 이상에서 대략 40% 정도에서 치매 증상이 나타난다- 환자수로는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앞에도 잠깐 언급했듯이 대기오염물질 가운데서도 미세먼지, 그 가운데서도 크기가 0.2마이크로미터 미만인 극미세먼지가 주범으로 여겨지고 있습다. 우리나라 기준을 보면 보통 지름 10마이크로미터 미만을 미세먼지(PM10으로 표시), 지름 2.5마이크로미터 미만을 초미세먼지(PM2.5)로 나누는데, 초미세먼지보다 더 작은 지름 0.2마이크로미터 정도의 것들이 극미세먼지입니다. 폐로 들어간 극미세먼지가 염증반응을 유발해 그 영향이 뇌까지 파급되면서 치매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죠. 또한 극미세먼지는 크기가 워낙 작기 때문에 코 안쪽의 비강의 내피세포로 직접적으로 침투해 들어가기도 합니다. 즉, 냄새만 맡아도 극미세먼지는 우리 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죠. 흥미롭게도 후각은 치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하거나 냄새를 구별하지 못하는 후각감퇴증은 치매의 주된 전조증상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극미세입자가 후각계를 통해 침투해 뇌에 손상을 일으켜 치매를 유발한다는 메커니즘이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세계 곳곳에서 이처럼 미세먼지와 치매와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자, 심지어 사우스캘리포니아대의 역학자 지우치우안 첸 박사는 최근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전 세계 치매 환자 발생의 21%가 대기오염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즉, 최근 들어 치매가 늘어난 건 우리가 더 오래 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마시는 공기가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한편 지난 2014년 세계보건기구는 흡연이 알츠하이머병 발생원인의 14%를 차지한다고 발표한바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흡연을 하게 되면 수많은 종류의 유독 미세입자가 우리 몸으로 들어갑니다. 따라서 둘을 합치면 들이마시는 숨결의 차이가 치매 발병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는 것이죠. 누구나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고, 공기는 흘러다니기 때문에 물이나 음식, 혈액처럼 관리하기 쉬운 것도 아닙니다. 뿌연 하늘이 시야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뇌도 가리고 인생도 가려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의 문제는 이제 우리의 미래를 걸고 기필코 개선해야 하는 인류 전체의 숙제가 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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