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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제대혈의 가치와 올바른 사용법

2017-03-10

제대혈의 가치와 올바른 사용법
얼마 전 출산을 앞두고 있는 한 지인이 제대혈 기증 서비스를 이용하려다가 한 병원의 행태를 보도한 기사를 보고 분노한 포스팅을 SNS에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세 아이의 제대혈을 모두 국립제대혈은행에 기부했기에 해당 기사를 보면서 분통을 터뜨렸지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부모들이 선의로 인해 기증한 아이의 제대혈을 모 병원의 원장과 가족 및 관계자들이 사사로이 이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인데요, 이에 복지부에서는 해당 병원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던 제대혈 은행에 대해서 국가 지정 기증제대혈은행의 지위를 박탈하고 이미 지원된 6억여원에 달하는 예산에 대해 환수를 추진함과 동시에 법적 기소에 들어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제대혈이란 말 그대로 제대(臍帶), 즉 갓 태어난 신생아가 모체와 연결되었던 탯줄과 태반 속에 들어 있는 피를 뜻합니다. 전통적으로 탯줄과 태반은 아이가 태어나면 끊어서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1980년대 들어 제대혈 속에 조혈모세포(hematopoietic stem cell)라는 세포가 들어 있음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금광으로 떠오릅니다. 아기의 혈액은 엄마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탯줄과 태반에 든 제대혈에는 다양한 혈액세포(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와 면역인자를 만들어내는 조혈모세포 조혈모세포(造血母細胞)란 말 그대로 혈액(血)을 만드는(造) 어머니(母) 세포란 뜻이다.
가 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조혈모 세포가 풍부한 제대혈은 특히나 혈액 관련 질환에 매우 효과적인 치료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인기있던 드라마 ‘가을동화’에서는 주인공 은서가 백혈병에 걸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골수 이식을 하려고 하지만, 맞는 골수가 없어서 결국 은서는 죽음을 맞게 되지요. 백혈병이란 혈액 세포 중에 비정상적인 백혈구가 증가하는 악성종양(암)의 일종으로, 원래 백혈구는 체내에 세균이나 기타 해로운 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하는 면역세포이지만, 백혈병에 걸린 사람의 백혈구는 이러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신체의 다른 부위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생명이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백혈병은 백혈구를 비롯한 혈액세포를 만드는 골수(骨髓)에 변이가 생성되어 일어나므로,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혈액에서 백혈구를 제거하고 비정상적인 골수를 완전히 없앤 뒤에, 건강한 골수를 이식하는 방법이 가장 선호됩니다.

최초의 골수이식은 1969년 실시되었고, 그 효과가 입증된 이후 백혈병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골수이식 역시 타인의 신체 조직을 넣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면역계의 주요 인자 6개가 모두 일치해야 이식이 가능한 매우 까다로운 방법입니다. 이러한 골수이식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바로 제대혈을 이용한 조혈모세포 이식이지요. 제대혈 이식은 골수 이식에 비해 여러 가지 장점을 지닙니다. 첫째는 제대혈은 출산의 부산물로 골수에 비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고(골수이식의 경우 기증자는 전신마취 후 엉덩이뼈에 구멍을 뚫어 골수를 채취해야 한다), 둘째는 태아는 아직 면역계가 미숙해서 주요 면역인자 6개 중 4개만 맞아도 이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제대혈에 이러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 때까지 쓰레기처럼 버려지던 제대혈에 새로운 관심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1988년 프랑스에서 글룩만이 판코니 빈혈증이라는 희귀한 혈액질환을 앓고 있던 5살 여자아이에게 제대혈 이식을 해서 증상을 치료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부쩍 관심을 받게 됩니다. 또한 미국 듀크병원 의사인 쿠츠버그에 의하면 형제자매의 제대혈을 이식받은 환아가 25년이 지난 2013년까지 건강하게 자라 가정을 이루었다는 보고를 한 바 있습니다.

일단 제대혈은 일생 중 단 한 번, 출생시에만 수집할 수 있습니다. 신생아가 태어나고 30초 이내에 탯줄을 자르고 아직 태반이 자궁 내에 있을 때 주사바늘을 탯줄 정맥에 주입해 제대혈을 채혈합니다. 이 때 제대혈이 굳으면 안 되므로 항응고제도 넣어주지요. 일반적으로 제대혈은 평균적으로 100ml 정도 채혈되지만, 탯줄을 늦게 묶게 되면 그만큼 탯줄에 남아 있는 혈액이 아기에게 흘러들어가므로 채혈양이 급격히 줄어들지요. 이렇게 수집된 제대혈은 즉시 이용할 수도 있고, 영하 80도 이하의 극저온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필요시 이식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처럼 제대혈이 매우 귀중한 혈액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리 제대혈을 보관했다가 나중에 혹시 문제가 되었을 때 쓸 수 있도록 한다는 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이 것이 과연 기존에 기대한 만큼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출생아는 43만 8400명이고, 어린이 백혈병은 해마다 400여건 정도 발생합니다. 이들 중에서 90% 정도는 항암제나 가족/타인의 골수이식으로 치료되기 때문에, 제대혈이 정말 필요한 아이는 10% 정도(40명)입니다. 물론 자신의 아이가 그 40명에 속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아의 경우, 본인의 제대혈 이식은 오히려 타인의 제대혈을 이식한 것보다 생존율이 떨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는 이식 거부 반응은 적을지 모르지만, 재발 비율이 높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제대혈 보관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제대혈의 보관과 이용 방법이지, 보관 그 자체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은 공공기관을 통한 공동 보관, 즉 제대혈 은행입니다. 이는 마치 적십자에서 혈액은행을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헌혈을 했다고 해서, 나중에 수혈을 받을 때 자신의 혈액을 받지는 않습니다. 타인의 혈액 중 혈액형이 맞는 것을 받게 되기 때문에, 헌혈을 하지 않은 사람도 수혈을 받을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제대혈 은행역시 이러한 개념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지요.

이번에 모 병원의 제대혈 유용 사건이 문제가 되는 건 이 때문입니다. 제대혈 은행에 아기의 제대혈을 기증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동기에서 댓가를 바라지 않고 기증합니다. 하지만 기증받은 제대혈이 모두 이식에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직접 환아에게 이식되는 경우는 10% 미만이며, 나머지는 다른 연구용으로 쓰여집니다. 이유는 신생아에게서 한 번에 채취 가능한 제대혈은 약 100ml 정도인데, 이 정도 양에 든 조혈모 세포만으로는 이보다 훨씬 큰 소아나 성인에게 이식하기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양이 부족하다거나 혹은 기타 이유로 기증이 어려운 제대혈은 연구용으로 쓰이는데, 이번에 문제가 된 모 병원에서는 ▲후천성 뇌손상환자를 위한 제대혈 시술 ▲뇌성마비 환자에서 제대혈 시술 연구 등의 목적으로 임상 시험용으로 기증받은 제대혈을 본래 목적이 아니라, 미용 시술이나 노화 방지의 목적으로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제대혈 속에는 조혈모 세포 뿐 아니라, 세포성장인자 등의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는 순수한 마음으로 제대혈 기증을 선택했던 수많은 부모들을 모욕하는, 그야말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좀 더 철저한 수사와 엄격한 처벌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 조혈모세포(造血母細胞)란 말 그대로 혈액(血)을 만드는(造) 어머니(母) 세포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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