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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여성천문학자 헨리에타 리비트

2017-03-24

여성천문학자 헨리에타 리비트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얘길 준비해 오셨나요?
요즘 흥미로운 영화가 한 편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히든 피겨스입니다. 1958년부터 시작된 머큐리 계획 당시 나사의 스페이스 태스크 그룹에서 일했던 세 명의 여성 과학기술자였던 도로시 본(Dorothy Vaughan, 1910~2008), 메리 잭슨(1921~2005, Mary Jackson), 캐서린 존슨(Katherine Johnson, 1918~)의 실화를 영화로 옮긴 것이죠. 영화는 극심한 경쟁과 냉정 체제 속에서 사회의 가장 약자인- 유색인종이면서 여성이라는 이중고를 지닌- 세 명의 여성 과학자들의 모습을 조명합니다. 과학 분야에서 여성의 고군분투기는 사실 낯선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죠. 그래서 또 다른 여성의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그렇게 이름을 자꾸 불러보고 이야기를 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그녀들이 잊혀지지 않게 해야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줄어들 테니까요.

어떤 여성을 소개하려고 이러시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오늘 말씀드릴 사람은 헨리에타 스완 리비트(Henrietta Swan Leavitt, 1868~1921)라는 이름의 미국의 천문학자입니다. 1868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랭커스터에서 태어난 리비트는 25살이 되던 1893년,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천문대에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연구원이나 기술자가 아니라 단순한 컴퓨터로써 말이죠. 사람에게 컴퓨터라는 말을 하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녀는 그런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컴퓨터의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컴퓨터란 책상 위에 올려진 혹은 들고다니는 기계장치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데요, 컴퓨터라는 단어는 이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습니다. 단 지금과는 뜻이 조금 달라서, 계산하다라는 compute라는 단어에 사람을 나타내는 -er이 붙어서 만들어진 것처럼 ‘계산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계산기를 두드려 답을 얻어내는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도대체 헨리에타 리비트 라는 여성은 하버드 대학에서 ‘어떤 걸’ 셌는데요?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개량해 하늘을 관측하는 도구로 삼은 이후, 망원경 기술은 점점 좋아져서 더 많은 별들 더 넓은 우주를 관측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사진기술의 발전과 결합되어 망원경으로 본 우주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원경을 이용해 수많은 사진들을 찍었고, 이 사진들에 담긴 별들을 세고, 거리를 측정하고 궤도를 계산하는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우주에는 너무나 많은 별들이 있기에 이들의 숫자를 하나하나 세고 이들을 일일이 분류하고 계산하는 것은 재미도 없고 지루하면서 동시에 성과도 별로 나지 않는 단순 노동일 수 밖에 없습니다. 100% 남성으로 이루어진 당시의 천문학자들은 누구도 지겨운 숙제 같은 이 일을 하려 하지 않았고, 이에 화가 난 당시 하버드 천문대의 책임자였던 에드워드 찰스 피커링(Edward Charles Pickering ,1846~1919)은 “차라리 우리집 하녀가 더 일을 잘 하겠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진짜로 그는 자신의 하녀였던 윌리아미나 플레밍을 고용해 이 작업을 맡깁니다. 그런데 플레밍은 피커링의 말처럼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해주었고, 이에 피커링은 젊고 똑똑한 여성들을 본격적으로 이 일에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1886년부터는 하버드 천문대에서는 본격적으로 계산과 데이터 처리를 하는 여성 계산원들을 채용하게 됩니다. 이들을 ‘하버드 컴퓨터(Harvard Computers)’라는 이름이었지만, 때로는 피커링의 하렘(Pickering's Harem)이라는 모욕적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회가 여성 연구원들을 어떤 시선으로 대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이름이었지요.

이 여성들은 급여를 어느정도나 받았나요?
어쨌든 이들 ‘하버드의 계산기’가 된 여성들은 공장 노동자들보다 조금 나은 시급 25센트를 받으며 매일 꼬박 8시간씩 낡은 책상 앞에 앉아 밤하늘을 찍은 사진 건판을 들여다보며 수천개의 별들을 밝기와 위치에 따라 분류하고 기록하는 단순노동을 반복합니다. 이는 남성 천문학자들이 하지 않는 단순 노동들이었죠. 이들은 천문대에 소속되어 일하면서도 망원경을 사용할 권리가 없어서 본인들이 계산하고 기록한 별들을 정작 본인들은 한 번도 망원경을 통해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헨리에타 리비트는 1893년 이 단순 노동에 자원합니다. 독신이었던 그녀는 충분히 먹고 살만큼의 유산이 있었기에 일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별과 하늘에 대한 열망이 허드렛일이라도 별을 볼 수 있다면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눈이 빠지게 별에 대한 사진들을 분류하던 어느 날, 그녀는 이상한 별들을 찾아냅니다. 보통 별빛들은 밝기가 고정되어 있어 변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그녀는 여러 장의 사진들을 비교해본 결과 분명 같은 별임에도 불구하고 밝기가 변하는 것을 찾아낸 것입니다. 게다가 그 별들의 밝기 변화는 마치 맥박이 뛰듯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것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이런 별들을 세페이드 변광성(cepheid variable)이라고 부릅니다. 수없이 많은 자료들을 직접 분석한 끝에 밤하늘을 찍은 사진에서 무려 1,777개의 세페이드 변광성을 찾아냈고, 각각의 세페이드 변광성들은 1.5일부터 127일까지의 서로 다른 주기를 가지고 일정하게 깜박인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더불어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아냅니다. 세페이드 변광성들은 주기가 긴 별일수록 더 밝다는 것입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지금 우주의 거리를 잴 수 있는 중요한 지표를 발견한 셈이니까요.

이 여성의 발견이 그렇게 중요한 거였나요?
우리는 경험적으로 가까이 있는 불빛이 멀리 있는 불빛보다 더 밝게 보인다는 것을 압니다. 같은 거리에서 같은 밝기였던 2개의 불빛 중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2배 먼 거리에 놓아두면 밝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즉 4분의 1로 어두워집니다. 그런데 아주 먼 거리에 있는 희미한 불빛을 보았다고 칩시다. 우리는 그 불빛이 원래는 아주 밝지만 워낙 멀리 있기 때문에 희미한 것인지, 아니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원래 불빛이 어두워서 희미한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지구에서 보는 가장 밝은 별은 태양입니다. 나머지 별들은 태양과 비교할 수도 없지요. 하지만 태양이 이렇게 밝은 건 태양이 상대적으로 지구에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별을 동일한 거리에 놓고 밝기를 측정한 절대등급으로 비교하면, 태양의 밝기가 1이라면, 시리우스는 이보다 22배나 밝고, 직녀성인 베가는 47배나 밝으며, 북극성은 무려 2,200배나 밝습니다. 심지어 R136a1라는 이름의 태양의 870만 배나 밝다고 하지요. 하지만 지구에서 보기엔 모두 그저 깜빡이는 촛불보다도 어두워보입니다. 매우 멀리 떨어져 있거든요. 이처럼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의 밝기, 즉 ‘겉보기 밝기’는 그 광원의 원래 밝기(절대 밝기)와 관측자와 광원 사이의 거리의 영향을 모두 받기 때문에 빛이 밝은지 어두운지만으로는 그 빛까지의 거리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방법으로 별빛의 절대 밝기를 알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우리는 절대 밝기와 겉보기 밝기를 비교해서 별이 절대 밝기의 기준이 되는 거리보다 얼마나 가까운지, 혹은 얼마나 먼지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겉보기 밝기가 절대 밝기보다 9배 정도 어둡다면 밝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니까 그 별이 절대 밝기의 기준 거리보다 3배 멀리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바로 그 기준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세페이드 변광성들의 밝기와 주기는 비례하므로 이들 사이의 관계를 찾아내면 다른 별들과의 거리를 잴 수 있는 지표가 되어 줄 수 있거든요. 리비트의 이 발견은 이론적으로 정리되어 1912년 ‘소마젤란 은하에 있는 25개의 변광성의 주기’라는 제목으로 [하버드 천문학 문고]라는 이름의 저널에 발표됩니다. 하지만 그 논문의 저자는 하버드 천문대 책임자인 피커링으로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녀의 이름은 논문 중에 “다음의 계산은 리비트 양이 작성했다”는 한 줄로 명시됩니다.

안타깝네요. 리비트라는 여성천문학자는 이렇게 조명받지 못하고 마는 겁니까?
리비트는 이후로도 조용한 삶을 살았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세페이드 변광성을 이용해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를 구하는데 성공했고, 이로 인해 우주의 크기를 재는 데 성공한 것도 모른 채 말입니다. 이 걸 계기로 그녀의 이름은 학계에 알려졌고, 노벨 물리학상의 수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지만, 이미 그녀는 세상 사람이 아니었지요. 다만 그녀의 이름만은 변광성의 주기와 밝기의 비례 관계를 의미하는 ‘리비트의 법칙’이라는 이름으로만 남았지요. 리비트와 같은 여성 과학자의 삶은 그로부터 반 세기가 지난 1960년대 나사의 여성 과학자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났고, 여전히 그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태어난 성별이 아니라 일에 대한 열정과 성과만으로 평가받는 시대를 만드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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