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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개인기억과 집단기억

2017-03-31

개인기억과 집단기억
현대는 과학기술과 사회제도, 문화적 인식 등의 발달로 과거에 비해 달라진 것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정말로 달라진 것을 꼽으라면 정보의 확산입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모든 사람들에게 정보 제공 및 공유의 장을 열어주어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매일 생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전 세계에서 생산된 디지털 정보의 양만 해도 4.4제타 바이트 정도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제타란 단위는 10의 21제곱을 뜻하는 말로, 요즘 많이 나오는 하드 1000기가 용량의 컴퓨터 10억대에 저장된 모든 정보를 합친 양 정도가 됩니다. 기존에 있던 정보가 아니라, 새로 생겨난 것들만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 양은 해마다 늘어나서 3년 뒤인 2020년이면 90제타바이트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못 찾는 경우도 허다하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봐야 할지 모르는 정보의 홍수 상태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중에는 이를 빌미로 진짜가 아닌 가짜 정보와 가짜 뉴스들이 그럴 듯 하게 포장하여 사람들을 오도시키는 경우도 많지요.

문제가 되었던 가장 큰 허위 정보는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선임 고문인 캘리언 콘웨이가 언급한 ‘볼링 그린 테러’ 사건입니다. 그는 지난 1월 29일과 2월 2일 두 차례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옹호하면서 이 사건을 언급했는데요, 그가 주장하는 ‘볼링 그린 테러’ 사건은 2011년 미국 켄터키주 볼링 그린 지역에서 이라크 난민으로 위장한 알 카에다 조직원 2명이 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테러를 벌였으나,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며, 이처럼 테러범들이 난민으로 위장하고 미국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그가 주장한 ‘볼링 그린 테러’ 사건은 그가 말하기 전까지 미국민들이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말이죠. 이러한 오보(misinformation)들은 신속히 시정되었지만, 역사상 이런 오보가 문제를 일파만파 퍼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너무나 많았습니다. 심지어 과학계에서도 말이죠. 대표적인 것이 홍역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이 된다는 논란과, 이미 노벨상까지 받은 에이즈의 원인인 HIV 바이러스가 실제로는 실존하지 않으며, 이건 다 정부가 성소수자와 마약중독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지어낸 헛소리라는 소문들이 있습니다.
사실 기억은 오류가 많습니다. 사람의 뇌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실제로 봐도 잘 못 알아보는 경우도 많고, 거짓말을 자꾸 반복하다가 본인 스스로도 그 거짓을 믿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많지요. 그런데 최근 일부 전문가들은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신경과 기억의 관계를 연구하는 대니얼 색터 박사는 "기억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방법으로 여러 그룹들에서 공유되며, 개인 기억와
집단기억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일단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얻고, 이를 기억으로 저장합니다 '과거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화자(話者)가 특정 부분을 선택적으로 반복함으로써, 그 부분을 강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입밖으로 발음을 내어 말하면 기억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언급되지 않은 관련정보'는 '관련되지 않은 정보'보다도 희미해지기 쉽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자신도 잊어버린다는 것이죠. 이런 효과를 인출유도망각(retrieval-induced forgetting)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범위가 매우 확장되었습니다. 즉,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직접 대화가 아니더라도, 메시지에 언급한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 사이에 인출유도망각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알려진 것입니다. 즉,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언급한 단어 쪽으로 기억이 치우치고, 그렇지 못한 쪽은 아예 잊어버린다는 것이죠. 또한 전혀 다른 타인, 즉 일반적인 언론 매체가 말할 때보다 자신과 친밀도가 좀더 높은 사람들 - 예를 들어 SNS 팔로워 등-에게 더 큰 영향을 받는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집단 기억에 좀더 쉽게 동조한다는 것이죠.

더 나아가, 이런 방식은 기억 형성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기억을 아예 왜곡시킬 수도 있습니다.
2011년 이스라엘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에 재직 중이던 에델손 박사는 30명의 지원자들을 다큐멘터리 영화를 한 편 보여주고, 영화의 내용과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각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지요. 그런데 1주일 후, 이번에는 참가자들을 불러 “지난 번에 영화에 대한 평을 조사해 봤더니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영화에 대한 평을 다시 한 번 들려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사실 연구자가 만들어낸 가짜 정보로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한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의 70%는 그 이야기에 공감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자신들이 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려주어도 의견에 공감했던 사람들의 10%는 여전히 자신의 의견을 정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10%의 갭을 에델손은 이렇게 설명했다. "일단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난 후에는, 그 악영향을 바로잡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이죠. 연구진이 ‘이거 틀린 거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해준 경우에도 여전히 10%가 기억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정보가 혼잡하고 난립하는 세상에서, 어떤게 맞는지 틀린지 정확히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는 내가 가진 기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에는 잘못된 기억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10%보다는 높아지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잘못된 기억이 집단 기억으로 남는 경우입니다.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이란 개인이 속한 특정안 집단의 공동의 기억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사건이 일어난 경우, 이에 대한 개인의 경험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이 기억들은 점차 통합되어 하나의 집단 통합된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흔히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80년대는 고도 성장기, 97년 IMF 이후는 침체기 이렇게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죠. 80년대 고도 성장기에도 망하는 사람들은 있었고, 극심한 불경기라고 해도 성공하는 사람도 있듯이 개인적인 경험과 이에 대한 기억은 달라도, 집단적으로 형성되는 이런 기억들이 있습니다. 이런 집단 기억은 집단 소속원 간에 의사소통을 위한 기초를 형성하는 바탕이 됩니다. 흔히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라면 ‘한(恨)’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뭐 이런 것처럼 말이죠. 이런 집단 기억은 구성원을 통합시키는 하나의 정체성을 작용하기도 하고, 소속감을 느끼게 해서 서로간의 거리를 단축시켜 주는 순기능을 갖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집단과 다른 기억을 지니고 있는 구성원의 의식을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도 있고, ‘좋은 게 좋은 거야’ 혹은 ‘전체를 위한 희생’ 등의 이유로 기억해야 할 일들을 묻어버리거나 집단 구성원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집단 기억 역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바뀌고 수정되기는 하지만, 한 번 형성된 것은 지워지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왔던 집단 기억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시기에 도달했는지도 모릅니다. 부디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집단 기억을 어떻게 기억할지 고려하는 어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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