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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만난 황혼육아 사례
제 외래 환자 중에 70세의 정씨 할머니는 평소에 고혈압과 골다공증으로 진료를 받으시는 분인데, 몇 달전부터 아들이 이혼을 하게 되어 4살된 아이를 갑자기 떠맡아 기르게 되었다. 그리고 한달쯤 지난후에 왼쪽 가슴이 아프고 피부에 발진이 돋아서 급히 방문을 하셨는데, 진단명은 대상포진이었다. 대상포진은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피로가 누적되고 스트레스가 많아지면서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발생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대상포진 말고도 속이 쓰리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위염증상도 함께 발생하였다.
또 다른 65세 김씨 할머니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고지혈증만 있어서 평소에 규칙적인 운동으로 잘 조절하고 계시던 분인데, 얼마 전부터 전신이 아프고 팔다리가 시리고 저린 증상이 심해지셨다고 하셨다. 두통과 불면증도 생겼다고 하셨다. 유난히 왼쪽 팔과 어깨가 많이 아프다고 하셨다. 혹시 다른 병이 생겼는지 확인해 보았는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더 올라가긴 했지만 그 이외에는 별다른 이상소견은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여쭤보니 두달전에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가 아기를 낳아서 그때부터 손자를 맡아 키우고 있다고 하셨다. 아이가 잠을 잘 자지 않고 잘 울어서 매일 아이를 안거나 업고 지낸다고 하셨다. 평소에 열심히 하던 운동도 아이 양육을 맡으면서부터는 전혀 하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황혼기 육아가 건강에 끼치는 영향
미국의 하버드 대학 연구팀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일주일에 9시간 이상 손자, 손녀를 돌보는 60대 할머니들의 심장병 발병률이 아이를 키우지 않는 할머니들에 비해 1.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에서 받는 만성적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병든 배우자를 돌보는 노인들을 4년간 추적조사한 결과, 그렇지 않은 노인들에 비해 사망 위험이 1.6배 더 높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미국 온타리오 지역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아이를 돌보거나 병자를 돌보는 노인분들에게 우울증이나 불안증 같은 정신질환이 더 많이 발생하였고, 특히 여성 노인분들에게 이런 경향이 더 많았다는 결과도 있다.
* 노년기 육아를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두가지 측면이 있을 것이다. 손자녀 육아를 거부하면, 자유롭게 생활을 할 수 있으나 자녀들과의 관계가 어색하고 소원해질 수 있다. 반대로 육아를 감당하여 자녀들로부터 감사를 받을 수 있지만 생활의 여유를 잃고 자칫 건강도 해칠 수 있다.그래서 노년기에 자녀들의 육아를 맡을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고려하여야 한다.
1. 분명하게 선을 그을 것: 체력문제
육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건강(체력)이 제일 중요하다. 따라서 내 건강상태가 어떠한지 스스로 판단하고 또 자녀들과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비록 건강상태가 괜찮아서 육아를 감당하더라도 노년기 육아는 고된 일이므로 중간중간 휴식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2. 비용문제 확실히 할 것
육아를 담당해 주는데 대한 분명한 댓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좋다. 부모자식간에 무슨 돈을 주고 받을까 생각하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분명한 역할과 태도를 결정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 항상 일정금액을 정확한 날짜에 지급하고 받아야 한다.
3. 육아 방식에 대한 의견조율
자녀들이 아이를 키우는 방식과 조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자녀들과 충분히 협의하고 논의하여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 방식을 결정하고 지키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4. 육아와 집안일은 분리할 것
육아를 감당할 때에는 어느 부분까지 자녀를 도와줄 것인지에 대한 구분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서만 감당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기타 집안일, 즉 청소나 빨래, 식사준비 등의 집안일은 맡지 않도록 한다.
5. 육아의 기한 정하기
언제까지 육아를 도와줄 것인지, 그 시기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산후조리 때에만, 첫돌까지, 3년동안, 유치원 입학까지 등과 같은 명확한 시기를 정하는 것이 좋다.
6. 육아 시간 결정
가급적이면 파트타임 형식으로 돌보는 것이 적절하다. 자녀들 근무시간에만, 또는 주 3회만, 주말 제외한 주중에만 등등으로 일과 휴식을 위한 근무시간을 분명하게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